테레사 수녀가 인도의 캘커타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의 집”을 만들어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길가에 버려져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데려다 먹여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 하였다.
그런데 구제의 일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입방아를 찧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는 손가락도 꼼짝하지 않으면서 봉사하는 일을 비판하는 못된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매스컴에서도 테레사 수녀를 비판하고 악담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비판의 논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날마다 물고기를 잡아 다가 입에 넣어 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그들이 더 게을러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낚싯대를 들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지, 물고기를 자꾸 입에 넣어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말을 들은 테레사 수녀는 어느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을 받고 조용히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돌보아 주는 아이들은 하도 배가 고파서 일어설 힘조차 없습니다. 병들어 자기 스스로 숟가락도 입에 넣을 수 없는 아이들입니다. 정신 이상에 걸린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낚싯대를 들려줄 수 없습니다. 입에다 물고기를 넣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에게 물고기를 넣어 주어, 그들이 다행히 자기 힘으로 일어서게 되면, 당신들에게 그 아이들을 보낼 테니 낚싯대를 들려주십시오.”
참으로 명답이었다.
그후로 테레사 수녀에 대한 비판이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낚싯대를 갖다 주어도 그것을 들고 일어설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솔로몬의 잠언에 보면 특별히 가난한 자를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19:17)
무슨 말인가?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인데 누군가 그 일을 대신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하여 갚아 주신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도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눅6:38)고 약속하셨다.
테레사 수녀가 18살 어린 나이에 수녀가 되어 평생 가난한 자를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서약하고 집을 나서는 날, 어머니는 마을 어귀까지 따라 나오면서 딸의 손을 잡고 울먹거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얘야, 너 꼭 예수님의 손을 평생 붙잡고 있어야 돼. 그리고 네 손도 예수님 손처럼 되어야 해. 꼭 기억하거라.”
그 어머니의 마지막 울먹이며 하신 말씀을 평생 마음에 새기고 죽을 때까지 가난한 자와 함께 살다가 간 테레사 수녀는 평생 자기자랑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상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저 거룩한 천상에 있는 영광의 보좌를 스스로 포기하시고 이 험악한 세상에 직접 우리 눈높이로 내려오신 분이 있다.
그분이 예수님이시다.
참으로 놀랍게도 예수님은 세상에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사셨다.
그분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9:58)고 스스로 고백하셨다.
두벌 옷도 가지지 않으셨다.
가난한 우리를 부하게 하시려고 대신 가난하게 되셨다.
그분은 일평생 가난한 자, 병든 자, 세상에서 사람 대우받지 못하는 자들 편에 서 계셨다.
그렇다면 세상사람 앞에 교회의 이미지는 과연 어떻게 비쳐져야 할까?
작은 예수로 비쳐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손도 예수님 손처럼 되어야 하지 않을까?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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