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하기로 소문난 놀부가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한 스님이 찾아와 말했다.
“시주 받으러 왔소이다.”
그러자 놀부는 코웃음을 치며 빨리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스님이 눈을 감고 불경을 외우는 것이었다.
“가나바라… 가나바라… 가나바라…”
그랬더니 놀부가 미심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기도 눈을 감고 불경을 외우는 것이었다.
“주나바라… 주나바라… 주나바라…”
놀부는 욕심이 많아 손을 펴서 나누어 줄줄 모르는 사람의 대명사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일평생 행복을 알지 못했다.
예수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행20:35)고 하셨다.
세 가지 수준의 인간형이 있다.
첫째는 인간이하의 수준의 사람이다.
마땅히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둘째는 품격 있는 수준의 사람이다.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일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셋째는 성숙한 수준의 사람이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을 어떤 수준의 사람이라고 판단하는가?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는 아주 작은 것 같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많은 “사람들을 살펴본 결과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성공을 하고 원망과 불평을 하는 사람들은 실패하는 인생을 살아간다”고 했다.
감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
왜냐하면 감사는 조건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도 간단하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감사하지 않는 것의 차이로 보인다.
신앙을 갖고도 감사하지 못하면 수준 이하의 사람이기 때문에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감사가 없으므로 놀부처럼 참 이기적이고 메마른 삶이 된다.
자식은 부모에게 감사하고, 형제는 형제에게 감사하고, 이웃은 이웃에게 감사하고, 조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네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명한 성경주석가 매튜 헨리의 산상수훈의 주석에 보면 “감사는 산수에서 더하기(+)와 빼기(-) 같다. 왜냐하면 감사는 하면 할수록 더욱 많아지고, 원망과 불평은 하면할수록 감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고 축복해 주셨으므로 오늘 내가 구원받은 자가 되었다면 가장 먼저 내가 할 일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에 감사하는 품격 있는 수준의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는 것은 품격 있는 수준의 사람을 넘어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감사할 줄 아는 성숙한 수준의 사람이다.
그것이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시편을 보면 전체가 다 감사이고, 시편 전체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시요 노래이며 찬양이다.
시편의 결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시편에 보면 적어도 30번 이상 “여호와께 삼사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150:6)라고 노래한다.
숨쉬는 사람은 숨을 쉴 때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찬양을 드려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수준의 하나님 백성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서 1장에 보면 인간이하의 수준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라고 하지 않는가?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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