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성어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병에 걸린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속을 알고 고통 당해 본 사람이 고통 당한 사람의 마음을 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라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문제가 있을 때 어려움이 있을 때 자기자신의 마음을 바라본다.
이런 사람은 나에게 무엇이 문제인가를 살피고 바라본다.
이런 사람은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기까이 해도 좋은 사람이다.
또 다른 4자성어가 있는데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이불을 덮고 자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이다.
공간적으로는 같이 있지만, 생각과 관심이 다른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문제가 있을 때 창문 밖의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돌린다.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 한다.
자신의 문제를 가리우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돌린다.
이런 사람을 가까이 하면 반드시 배신을 당한다.
연로하신 한 아버지가 오래간만에 온 가족을 불러 놓고 무거운 마음으로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어제 병원에 갔다 왔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이 이제 내가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구나… 젊은 날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어린 너희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부족한 아비 만나 너희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버지는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3남매 중 장남이 아버지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유산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제가 장남이니까 반 이상은 저에게 주십시오.”
둘째 딸도 “아버지, 이 집은 제 앞으로 두고 가세요.”
셋째 아들도 “아버지, 생명보험금 수령자는 누구 이름 앞으로 되어 있어요?”
죽음을 앞 둔 아버지 앞에서 자기밥그릇 챙기는데만 골몰했다.
조금 후 자녀들은 서로 자신이 더 많은 유산을 물려 받아야 한다며 고성이 오가더니 결국 형제 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이것이 동상이몽이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예수님께서 가지신 감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반을 함께 했지만,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기 보다는, 동상이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예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주 비밀을 공유하셨다.
이제 얼마 있으면 배신을 당하고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예수님의 비밀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을 누가 높으냐, 나는 우의정, 너는 좌의정을 하겠다고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주님 앞에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것이 제자들의 동상이몽이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막10:45)고 하셨다.
예수님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섬기시려 오셨다.
모든 탓을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자신에게 돌리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죄값을 치르시고 우리 대신 죽으시고 우리를 살리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결코 상처를 주지 않으시고 탓하지도 않으신다.
그러므로 주님을 가까이 하고 그분을 따라가는 것이 유익이 아니겠는가!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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