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한 마디로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인생목적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살되 영원히 사는데 있다. 성경은 이 세상을 두 부류로 나눈다. 빛에 속했느냐 어둠에 속해 있으냐? 생명이냐 죽음이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천국이냐 지옥이냐?로 나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12:30).
예수님과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고 사역하는 자들은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반대하고 예배의 모임을 헤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예수님 편에 있든지 예수님을 반대하든지, 예수님 안에 있든지 밖에 있든지, 두 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신앙의 중간지대, 회색지대는 없다. 이편이든지 저편이든지 확실히 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3장에 등장하는 일곱교회 중에 회색교회가 있었다. 어떤 교회인가? “라오디게아교회”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15)
덥지도 차지도 않는 미지근한 교회,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교회를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6)고 하셨다. “Spit you out of my mouth”, 즉 입에서 나쁜 것을 뱉아 내듯이 뱉아 내시겠다는 뜻이다. 예수님께 속하든지 세상에 속하든지 둘 중에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믿으면 천국이요 믿지 않으면 지옥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Simple Message이다. 빛에 속하지 않으면 어둠에 속한 사람이다.
얼마 전에 한국의 어느 목사가 충청도 진천에 교회개척을 했다고 한다. 마침 시장에서 만난 이웃집 사람에게 이번 주일에 교회를 나오라고 전도를 했다. 그랬더니 “그러지유…”라고 쉽게 대답을 했다. 그래서 새신자가 온다고 좋아하면서 기다렸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동네 앞을 지나가다가 또 그분을 만났다.
“지난 주일날에는 기다렸는데 안 오셨더라구요. 이번 주일날에는 꼭 오셔요. 기다릴께요.”
“알았시유… 갈께유…”
이번에도 그분이 오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대로 구하라 찾으라 두들기라고 하셨으니까 가서 두들기기로 했다. 이번에는 직접 옆집으로 찾아가서 문을 두들겼다.
“꼭 오실 줄 알았더니 이번에도 안오셨더라구요. 내일이 주일날인데 꼭 오실거죠?”
“알았다니께유… 갈 때가 되면 어련히 갈텐디 왜 자꾸만 보채긴 보채시남유…!”
이런 분이 전도하기가 제일 힘들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미지근한 회색을 싫어하신다. 인간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어느 한 편에 속해 있다. 예수님 편에 속하지 않았다면 마귀에게 속하였다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마귀의 자식이다. 이를 부정하고 싶겠지만 성경의 말씀이 그렇다(요일3:8-10/4:2-6). 결국 자기를 부정하고 주님을 인정하느냐 아니면 주님을 부정하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양떼들이다. 낮에는 목자를 따라가야 꼴을 먹고 살 수 있다. 밤에 양떼들은 양의 우리에 들어가야 쉼을 얻고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문이시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문이다
출애굽기 1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출애굽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들은 430년의 길고도 긴 세월 동안 이집트의 종살이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지도자 모세를 부르셔서 자기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셨다. 그들이 출애굽을 하던 마지막 날 밤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던 일이 무엇이었는가? 집집마다 어린양을 죽여 문의 인방과 문설주에 어린양의 붉은 피를 바르도록 하셨다. 믿음으로 그 피를 볼 때에 사망이 그 집을 지나갔다. 그 피를 문설주에 칠한 집집마다 죽지 않고 구원을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처방의 말씀을 믿지 않고 피를 바르지 않는 집집마다 사망의 곡소리가 온 애굽 땅에 진동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날 밤 문의 인방과 문설주에 발랐던 그 피는 예수님의 피를 예표 했다. 그리고 피 묻은 그 양의 문 역시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의 예표였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마다 그 피묻은 문으로 들어갔다. 그 문이 바로 십자가의 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 피흘린 십자가의 문은 구원의 문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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