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많은 문이 있다. 집집마다 문의 개수가 10개도 넘는다. 날마다 문을 통과한다 그때마다 생각하자. 예수의 좁은문을 생각하자. 그렇게 하라고 문을 말한 예수가 찬양스럽다. 넓고 화려하고 요새같은 성문이 있어도 그것이 만리장성이라도 예수는 ‘성경의 문은 좁은 문이다’라고 한마디 했다. 좁은문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접근이 불가능한 문이다. 좁은문은 단 하나뿐인 문이다. 예수의 문이다.
햇빛과 비를 주시는 데 인색하지 않으신 하나님이 문에 대해서 만큼은 좁은 문을 언급한 것은 좋은 것을 좋게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진주를 개나 돼지에게 주는 바보는 없다. 넓은 문을 반대하지 않는 예수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넓은 길이 멸망 길이 아니면 된다. 과연 누군들 이 말에 책임을 질수 있을까?
예언을 폐하지 않으신 예수는 이사야의 언급과 모세의 기록을 생각한다. 이사야도 말하기를 이 백성이 내 뜻을 알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모세 역시도 에덴의 입구를 봉쇄하라고 했었다. 죄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보물도 악하게 쓰는 인간의 죄성을 성경은 경계하기 때문이다. 죄를 먼저 푸는 일이 좁은문의 일이다.
여리고 성은 가장 강한 문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문이 허물어 졌다. 외부의 힘에 의해서 허물어 진 것이 아니라 내부의 어떤 분열로 인하여 허물어졌을 가능성이 많았을 것 같다. 왜 그랬을까? 그 문은 좁은문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좁은 문을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한가지 이유를 말하자면, 애굽에서 부터 출발한 이스라엘의 군대들이 에굽을 떠나 광야와 가나안을 통과하여 여리고 성 앞에까지 도달한 순간 성안에 있던 사람들은 간담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광야의 전갈과 뱀과 폭염과 밤에 추위와 그리고 사람들이 가서는 안되는 곳을 통과한 전대미문의 이스라엘이 여리고에게는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죽음을 이긴 자는 세상을 이긴다.
성경은 어쩌면 문에서 시작하여 문으로 끝나는 책일지도 모른다. 아담과 하와가 실수를 범한 이후에 에덴에는 그 문이 없어졌다. 그 이후로 천국으로 가는 문은 좁은 문이 되었다. 그러므로 좁은 문은 예수의 문이다. 바울의 말대로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온 세상을 죄인들의 나라로 만들었다.
죄인들을 성경은 소경들이라고 한다. 소경들의 눈에 좁은 문이 보일 리가 없다. 상상해보면 소경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다만 기가 막힐 뿐이다. 좁은 문은 좁아서가 아니라 좁다는 말의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였던 것 같다. 예수가 좁은 사람인가?
소경이 눈을 떠서 좁은 문을 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좁은 문은 기도의 문이다. 다윗은 그렇게 매달렸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될 때까지 매달렸다. 결국 다윗은 마음에 시온에 대로가 열리는 체험을 했다. 그의 집요한 기도의 결과다. 왕으로서가 아니라 종으로서 그가 만난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였다.
전쟁의 시간 속에서 이스라엘은 숨돌릴 틈이 별로 없었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대부분의 전쟁을 패한 이스라엘에게 다윗이 선물로 그들에게 주어졌다. 연약한 백성들은 전쟁에 나간 다윗이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성문을 굳게 잠그고 그를 기다렸다.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이 돌아와 찬양을 드리기 시작한다. 문들아 머리 들어라!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도록 문들아 머리 들어라. 예루살렘성 12문이 모두 개방되었다. 아슬아슬한 역사를 살아왔고 빛난던 유다지파의 혈통은 모두 지워진지 오래되었고 지금도 그렇다. 가자와 팔레스틴은 아마 미국이 돈을 주고 사려는 것 같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기 때문에 다윗의 전쟁은 언제나 승리였다.
그 다윗이 패배의식에 늘 고개숙인 유다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너희가 영광이 들어가는 문들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니 영광이 들어가도록 문들아 고개를 들어라 라고 다윗은 외쳤다. 그 문들이 좁은 문이 되는 순간이다. 영광이 들어가는 문이 좁은 문이다. 그 순간이란 문들이 고개를 들 때이다.
이스라엘은 문명의 발상지라고 하는 두 강 사이에 끼어서 언제나 긴장하고 살았었다. 그 긴장이 평화가 될 때는 단 하나의 조건에 달려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버리지 않을 때였다. 다윗은 그 법을 지키는데 이스라엘과 왕위를 모두 걸었던 하나님의 종이었다. 하나님이 그것만 원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나는 문이다’라고 했다. 양의 문이다! 양들은 그 문을 들어오고 나가고 하면서 꼴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고 말했다. 예수는 자신이 좁은 문이라고 했다. 예수의 죽음이 하늘로 가는 길을 열었고 그 누구도 자신의 몸을 찢으면서 그 하늘의 문을 연 사람은 없었다. 그것도 자의가 아니라 오랜 예언의 결과로서 일어난 그 일을!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이다.
예수로 인해 성경을 보는 시각을 갖게 된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예수의 좁은 문을 통과한 사람들은 공중에 나는 새처럼 들에 핀 백합화처럼 자유롭고 평화롭다. 좁은문은 야곱의 사닥다리 같아서 하늘의 복을 오르락내리락하게 하는 축복의 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좁은 문은 단 하나의 문이기도 하고 가장 좋은 문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좁은 문이 있다. 좁은 문을 통과하면 넓은 길이 보인다는 믿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는 문이 열린다고 했다. 그렇게 열리는 문이 좁은 문이다. 그래서 좁은 문은 좋은문이다.
성경의 사람들이 문을 두드려왔다. 문이 부숴지도록 두드려왔다. 그런데 예수가 다가가면 마치 좋은 건물의 입구를 들어갈 때 문이 자동으로 열리듯이 그 문은 자동으로 열린다. 제자들에게 그 열쇠를 주었다. 제자들은 예수 이름으로 열고 그 좁은 문을 들어가고 나온다. 들어가면 꼴을 얻고 나오면 구원을 얻는다고 했다. 꼴이 고갈된 세상에서는 소통이 안된다.
얼마후면 제자들의 곁을 떠날 예수는 제자들에게 금을 주거나 은을 주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예수이름을 주었다. 그 이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담은 능력이다. 좁은문은 좋은문이다. 좁은문의 능력으로 먼저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부터 열어야 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살까에 대해서 구하면 그 문은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다시 열릴 수 없는 인간적인 기도로 돌아가게 된다. 성령의 열매는 이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 맺을 수 있다. 희미하게 좁은 문의 그림자를 보았던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과 엘리야라는 사람들은 자동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얼마나 사투를 벌였는가!
하나님 앞에서 죽자 살자 이길 밖에 없다는 어떤 운명을 끼고 달려드는 사자처럼 덤벼들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낙심과 수많은 좌절 안에서 인생이 거의 사라지고 없었었다. 엘리야는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랬던 좁은문이 예수이름으로 저절로 자동으로 열리는 자동문이라고 예수는 말했다.
그 문은 휘장을 찢어지게 하는 문이었기 때문이고 그 문은 죽은 자들의 무덤을 열리게하는 문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좁은문은 예수 이름이다. 그의 이름은 양의 문이고 하늘 문이고 좋은 문이고 생명의 문이고 구원과 영생의 문이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던 예수는 그 문을 통과하고 나면 두 가지가 따라온다는 것을 말했을 수도 있다. 하나는 크고도 넓은 비밀한 일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말씀의 세계가 그렇게 아름답고 소중하고 진실로 천국은 흔들림이 없는 나라라는 것, 진동할 수 없는 견고한 반석같은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좁은 문을 출입하다 보면 넓은 길에 있는 세상의 일들이 저절로 풀려나가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안 풀리는 것 같아도 흔들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넓은 길에서 공중에 나는 새처럼 들에 핀 백합화처럼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의 싹을 틔우며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으면 받은 만큼 빚쟁이가 된다. 좁은 문의 영향권 아래에 있을 때 가장 힘이 쎄고 가장 부드러운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재물로 되는 나라가 아니라 이것은 믿음으로만 되는 나라다. 말씀의 나라는 어린아이의 나라가 아니다. 관계이전에 좁은문에 먼저 가까이 가라.
기적은 어린아이의 나라다. 숙성된 포도주가 진한 향기를 내듯이 숙성된 말씀이야 말로 인생을 바꾸고 가문의 운명과 나라 전체를 바꾼다. 그리고 세상의 어떠한 것에 관심을 빼앗기지 않는다. 세상에 흡수되지 않는다. 제자들을 생각해 보라
왜 그들이 순교를 당했을까? 죽을만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마 세상살이에서 그럴만한 일을 만나본 적이 있을까? 그들에게 있었던 일이 어떤 종교적 쇼맨십이거나 역사 속에 있었던 영웅담과 전혀 달랐다. 하늘의 옷을 입어 보고 하늘이 임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생명의 군대로 다시 일어난 것도 에스겔의 환상으로 끝난 일이 아니었음을 예수는 보여주었다.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에 다윗의 시온의 대로처럼 길이 나게 된 것처럼 좁은 문 좁은 길을 통해서 오는 하늘의 날마다의 위로와 예수를 떠날 수 없는 생명력이 그들을 붙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은 왜 그렇게 매를 많이 맞았을까? 왜 이것이 그리도 중요할까? 생각 속에서 이런 일들을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군인은 전쟁용이다. 운동선수는 좁은 문을 통과해서 결승에 이른다. 그리고 농부는 부지런히 땅을 일군다.
좁은문은 좋은 문이다. 자동문이다. 하늘 문이다. 예수의 이름의 그 문을 두드리면 누가는 말하기를 성령을 받는다고 말했다. 낙타는 세상의 힘을 상징할 수 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말할 수도 있다. 낙타는 어쨌거나 바늘구멍을 들어갈 수 없다.ㅇ{ 성령의 바람같은 말씀은 빛과 같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 들어가서 뿌리를 내리며 자란다. 좁은 문, 예수께서 하는 일이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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