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여섯 해가 넘는 세월을 살았지만,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1950년 6월 25일 그날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고향을 잃었고, 가족과 헤어졌으며, 너무 어린 나이에 사람이 겪어서는 안 될 일들을 보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상실의 한가운데서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만났다.
나는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한국말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고, 전쟁 말기에는 학생들까지 탄광과 공장으로 보내졌다. 그런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 가정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만난 아버지의 믿음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늘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 믿음은 우리 가족의 버팀목이 되었다.
6·25가 터지자 우리의 삶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아버지는 몸을 숨겨야 했고, 나 역시 군대로 끌려갈 위기에 놓여 있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밤, 나는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하며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그리고 한 교회의 집사님 댁 마루 밑에서 넉 달을 숨어 지냈다. 외롭고 두려운 시간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곳은 내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만났던 자리였다.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이사야의 말씀이 그 어둠 속에서 나를 붙들어 주었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잠시 가족과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전쟁은 곧 다시 우리를 갈라놓았다. 이어진 피난길에서 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상을 보았다. 길 위에는 쓰러진 사람들이 있었고, 아이들은 부모를 잃은 채 울고 있었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끝없이 남쪽으로 걸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어머니와 형제들과 헤어졌지만, 결국 그들과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전쟁을 온몸으로 겪고 난 뒤 나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분명하게 깨닫는다. 전쟁은 결코 평화를 이루는 길이 아니다. 총성과 폭격이 남기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깊은 상처이며, 전쟁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잃게 만든다. 집과 고향을 앗아가고, 가족을 갈라놓으며,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에도 평생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남긴다. 나는 이 땅과 세계 어디에서도 이러한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 내가 누리는 자유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고 살아간다.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젊은이들,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피난길에 올랐던 사람들, 그리고 한반도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수많은 이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평화 또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된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또한 나는 힘으로 상대를 누르고 두려움으로 유지되는 질서는 결코 평화라고 부를 수 없다고 믿는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더 깊은 상처를 남기는 방식일 뿐이다. 내가 전쟁 속에서 본 것도 바로 그러한 현실이었다.
거의 한 세기를 살아오면서 내가 배운 것은 단순하다.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고,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으며, 사람은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더 많이 나누며 살아갈 때 참된 기쁨을 누린다는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다음 세대가 있다면 부탁하고 싶다.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평화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며, 살아 있는 동안 서로 사랑하고 기꺼이 나누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전쟁에서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평화를 지켜 내는 지혜이며 서로를 살리는 마음이다.
이것이 전쟁의 불길을 지나 거의 한 세기를 살아온 한 그리스도인이 6·25 발발 76주년에 앞서 전하는 조용하지만 간절한 신앙고백이다.
문태화 목사
1929년 평안남도 안주 출생
1959년 숭실대학교 졸업 후 도미
캘리포니아 지역 30여년간 목회
개척 교회 및 주일학교 사역(은퇴 후 30여년)
현재 휴스턴 제일연합감리교회를 섬기는 중
![[6·25 특집 독자기고] 잊을 수 없는 6·25, 평화를 말하다 1 7 1 1 06262026](https://kjhou.com/wp-content/uploads/2026/06/7-1-1-06262026-1024x704.jpg)



![[영상]이 대통령 "개헌 위해 필요하면 임기 단축 수용" 5 [영상]이 대통령 “개헌 위해 필요하면 임기 단축 수용”](https://kjhou.com/wp-content/uploads/2026/08/video-0815-360x180.jpg)





![[영상]이 대통령 "개헌 위해 필요하면 임기 단축 수용" 11 [영상]이 대통령 “개헌 위해 필요하면 임기 단축 수용”](https://kjhou.com/wp-content/uploads/2026/08/video-0815-120x8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