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 봄으로 뒤덮힌 들판에서 잔인한 4월이라는 말도 지나간 역사에 대한 수사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대지가 전쟁도 지진도 홍수도 그 모든 잔인함을 품고 새날을 폈듯이 우리의 마음도 꽃처럼 다시 피어났다. 어느 시대가 잔인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다 지나가고 만다. 그 일로 꽃을 피웠던 것이 사람들의 과거였다.
잔인한 것은 십자가 였다. 짓밟힌 십자가의 고개 너머에는 벌써 새 길도 났고 길가에는 평화로운 미소를 가진 꽃들의 생명의 노래들을 듣는다. 그래서 자고 나면 자라있는 꽃들을 주 예수는 보라고 했었을 것 같다. 너희의 믿음이 지금 살아있어야 하고 자랄 수 없다면 이 꽃하나만도 못하다는 성경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4월은 목련과 백합화도 피고 공중에 나는 새들도 합창을 하는 계절의 아침과도 같다. 이것은 계절의 갓 태어남이다. 계절의 첫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 4월에는 첫사랑이라는 마약성분 때문에 나른하고 몽롱해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친구들이라도 만나 노닥거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4월에도 중요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메시지다. 온통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4월의 노래들을 다시 한번 듣는다. 모든 일에 주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귀는 복이 있다. Sarah Reeves는 노래하며 주를 예배한다. ‘love You the Lord. Sweet sweet Sound in your year. Worship is everything!’ 사람들은 봉한 포도주와 같이 꽃봉우리 터지는 것 같은 봄의 열정들을 본다. 꽃들은 해산의 진통도 없다. 아름답게 봄을 탄생시키면서 온천지와 함께 사랑의 콧노래를 부른다.
모든 피조물들은 서로 서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귀에 들을 수 있도록 쉬지도 않고 말한다. 늘 같은 봄이라도 메시지를 듣는 봄이면 그 봄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과도 같고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는 사랑과 죽음의 차별을 두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게 한다. 이것이 4월의 노래다.
그 울림이 깊은 사랑은 ‘꽃보다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4월의 사랑을 사람들은 부활의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성경은 부활을 겨냥하며 달려 왔다. 부활이 모든 것의 분기점이다. 4월의 사랑은 그 반환점에서 태어났다. 이것이 사랑의 성취였다. 이 부활의 사랑노래를 계속 부르며 살아가라고 4월은 그렇게 차갑고 잠든대지를 또 깨운 것이다.
부활의 사랑을 가지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주를 사람들은 사랑한다. 부활의 사랑을 가지고 이제는 서로사랑하라고 너희끼리 더욱 사랑하라고 말한다. 내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고 그리고 내 양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양들을 사랑으로 서로 돌보라고 말씀하신다.
부활은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다. 이 사랑이 나의 사랑이 되면 그것은 생명이고 영생이 된다. 영생은 우리를 더욱 가까이 하게 한다. 사귐이다. 그저 사귐이 아니라 부활의 사귐이다. 나의 사귐이 아니라 하늘의 옷을입은 사귐이다. 다채로운 초록과 같은 찬란한 이 계절은 모든 계절들을 서로 사귀게 하면서 4월과 함께 하나가 된다.
인생!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일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영생이라고도 했다. 영생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는 베짱이 인생에게는 없었다. 유혹에 걸려넘어졌을 뿐이었다. 그 베짱은 변하여 젊은날의 잘못과 허물들로 걸었던 과거들을 터는 부활의 담대함으로 간다. 고통스럽고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나 사랑은 친구처럼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사랑은 나와 함께 고난의 쓴잔을 마시며 인생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산허리를 돌고 돌아 부활 이후의 길을 안내한다. 그리고 정상에 이르게 한다. 천년 만년 걸리는 일이 아니다. 사랑하면 된다. 4월의 사랑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악보를 reading 해가는 것이다. 성령이 스승이다. 정상에 올라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을 듣다가 봄의 사랑에 취하면 사람들도 4월의 노래대열에 합류한다.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것이다.
누구나 하나님과의 첫사랑이 있다. 4월에 시작된 첫사랑은 나를 떠나지 않는 그 사랑이다. 그런 사랑을 우리는 나의 주인으로 가지고 있다. 그 사랑이 새벽을 깨운다. 새벽은 사랑의 시작이다. 사랑은 말을 안해도 서로의 마음을 너무 잘안다. 그래서 첫사랑이다. 이 불같은 사랑은 나와 함께 아픔을 나누고 나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고 나와 함께 부활했다.
과거의 부활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홀로 부활이었다. 현재의 부활은 말씀의 부활이다. 함께 죽고 함께 사는 부활이다. 그리고 미래의 부활은 둘째사망의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는 성령의 사랑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공의와 허무 앞에서 폐해져도 사랑만이 남아서 주 예수 다시 오실 때 그 사랑이 예수와 함께 아버지를 만나는 길이된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면서 하나님과 백성들은 밀당을 했다. 그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서 서로간에 사랑의 수위를 조절하면서 울다가 웃다가 마침내 가나안땅에 이르렀다. 요단이 갈라졌을 때 영원과 과거가 만나 현재를 정복했었다.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을 보았다. 이것이 모든 피조물들의 믿음의 원천이 되었고 모든 시대를 위한 삶과 사랑의 길과 원리가 되었다.
이제 사랑만 하면 된다. 조금 더 깊은 사랑만 하면된다. 십자가 사랑이 점점 나의 사랑이 된다. 바울은 깊어지는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이것을 사랑의 깊이라고 말했다. 높이 깊이 넓이 깊이의 사랑을 말했었다. 4월의 사랑노래는 그 출발점에 서있다는 것이다. 만물들의 말모이는 이제부터는 사랑이다. 인생과 세상에 사랑의 엔진이 장착되었다.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가면된다. 그 기름부음은 기도와 성령의 말씀이다. 인생에 기름을 붓는다. 천국문을 통과할 때도 문지기 천사에게 이 기름부음 받은 사랑만 보여 주면 된다.
그래서 그 사랑은 현실에 깊이 뿌리를 내리며 노래하며 살아간다. 애가도 좋다. 찬미도 좋다. 노래면 다좋다. 사랑은 아주 현실적이다. 이 땅의 현재를 살면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받으며 사는 것을 사랑하며 산다고 말한다. 생명의 말씀을 주는 것을 겨로 사랑이라고 말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주 예수의 말씀은 모두 생명이다, 주 예수는 ‘내가 주는 말이 곧 영이고 생명이라고 했다.’ 이것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놀다가 살다가 죽다가 웃다가도 이 일을 한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결국 영의 말씀이다. 생명의 말씀을 영이라고 한다. 이 생명의 말씀에 대해서는 주 예수 세상에 계실 때 끊임없이 반복하며 예고했었다. 그래서 믿는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으로 나타난다. 나타났으니 내게 있는 말씀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다.
이 생명은 어느날 갑자기 홀연히 왔다. 잘 몰랐다. 정말로 순간적으로 사랑은 왔다. 첫사랑이다. 오는 그 사랑을 인위적으로 거부할 장치가 인간에게는 없다. 그 사랑을 시작으로 그 사랑을 중심으로 인생의 드라마는 전개된다. 감정때문에 힘들고 심한 상처들로 좌절했어도 그 사랑은 모든 인내 가운데 사랑을 받은 사람을 떠나지 않고 그 상처들을 디딤돌 삼아 심지가 곧은 평강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사랑이 한다. 4월은 콩깍지 사랑이어서 정신을 잃고 만다. 내가 나를 어떻게 할수 없는 것이다. 도망갈 수 없다. 사랑아 나를 좀 내버려다오! 그래도 이제는 안된다.
십자가를 거쳐서 돌고 돌아온 사랑은 우리 때문에 변할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이다. 영원한 사랑은 우리의 호흡과 함께 있다. 이 믿음에 의지해서 살면서 이 사실을 잊지 않음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물러서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사랑때문에 우리를 포기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죽어서는 갖는 사랑이 아니라 살아서 완전을 향해가는 이 사랑을 위해 4월의 노래는 만들어졌다. 곧 뜨거운 여름이 온다. 그가 우리를 먼저 사랑했었다는 깨달음 뿐이다. 성경이 사랑타령밖에 할말이 더 있었겠냐 싶다. 사랑해!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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