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는 세리였다.
당시 세무서 직원은 유대인들에게 극도로 멸시를 받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세무원이 된다는 것은 로마정부의 앞잡이라고 할 수 있다.
36년간의 지배를 당한 우리 민족으로서는 너무나 피부에 와 닿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그를 친 로마정부의 앞잡이로 취급을 했다.
부자로 살았지만 사회로부터 이웃과 동족으로부터 멸시받은 사람이었다.
죄인으로 취급받고 이웃들로부터 상종을 거부당하고 따돌림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를 죄인이라고 정죄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 들러 저녁석사를 함께 하셨다.
그랬더니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9:11)고 비난을 했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정죄한 민족의 배신자 집에 들러 교제하는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세가지의 관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째, 의인의 관점으로서 바리새인들의 입장으로 보면 예수님이 비난의 대상일 수 있다.
긍휼의 관점으로서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선한 일이다.
둘째, 예수님은 고독하고 외로운 한 사람에게 찾아가 위로해 주셨다.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셋째, 죄인의 관점으로서 세리 마태의 입장에서 보면 기쁘고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스스로 의인이라는 관점을 가진 바리새인들은 선한 일을 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칭찬은 커녕 도리어 비판과 불평을 던지고 있다.
선의 일을 그들의 입장에서 악한 일이라고 비난한다.
병들어버린 마음이다.
병든 마음이란 자신이 의로운 기준이고 선의 기준이라고 판단하는 마음이다.
그들은 스스로 의로운 사람들이라는 차별의식이 있다.
자신들은 선하고 마태는 악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의인이고 마태는 죄인이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중요하지 않고 자기가 중요하다.
교회 공동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기의 뜻만 관철시키면 만족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중요하지 않고 자기가 더 중요하다.
이런 사람은 가까운 가족들을 불행하게 하고 공동체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올바른 관점(Point of View)이 중요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세계관(World View)라고 한다.
올바로 바라보는 눈이 복이 있는 눈이다.
마음이 비뚤어지면 선한 사람도 비뚤어지게 보인다.
누어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거꾸로 보인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틀리다”고 판단한다.
“나는 의롭다”라고 믿으면 “다른 사람들은 죄인이다”고 믿게 된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이웃도 세상도 바르게 볼 수 있다.
예수님의 관점은 마태를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셨다.
마태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셨다.
그래서 사랑스럽게 보였다.
사랑하셨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를 찾아가 함께 마시고 먹고 주무시고 교제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다.”(마9:12)고 하신다.
건강한 사람에게 어찌 의사가 필요하며 의인에게 어찌 구원이 필요하겠는가?
우리가 다 죄인이기에 구원이 필요하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신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
그러면서 “내가 긍휼을 원하니 너희도” 소외된 사람에게 외로운 사람들에게 이웃들에게 긍휼의 관점을 가지라고 분부하신다.
이것이 사순절의 의미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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