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좋은 것이다. 순결도 좋다. 이것은 예수의 인격이었다. 타락이란 예수와 성경의 선한 의도로 창조되고 사용되는 용어와 진리들을 다른 목적으로 악용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뱀은 자신의 그 지혜를 예수를 반대하는데 악용했다.
뱀과 사람은 같은 날 6일째 창조되었고 비둘기는 다섯째 날에 창조되었다. 창조는 위에서 아래로 질서있게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 안식일 전에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여 만물을 섬기라고 임무를 주었다, 그리고 사람에게 짝을 만들어 주고 하나님의 관심이 사람에게만 있는 것 처럼 보시기에 너무 좋았다고 했다.
같은 날 6일째 창조된 뱀은 소위 질투가 하늘을 찔렀을 것 같다. 이것이 구체화된 사건이 가인과 아벨의 예배 사건이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을 때 가인은 꼭지가 돌았고 아벨을 죽이게 되었다.
뱀은 창조될 때는 보기에 좋았다. 그 때는 뱀은 뱀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에 뱀은 하와에게 접근하여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첫 말씀을 비틀어서 에덴이 허물어지게 했던 첫 번째 사건이었다.
뱀은 예수의 반대편에 있었고 뱀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할 사람의 나라 뱀의 나라를 세우려 했었을 것 같다. 인생은 그 아래에 소속이 된다. 그것이 저주이고 고난의 길이고 그것이 인생을 고통가운데로 들어가게 한 원인이 되었다. 뱀이 그 일만 하다가 지옥에 갔다는 말이다.
그래서 뱀에게서 배울 것은 단 한가지라고 예수는 말했다. 어려움을 당했다. 그런데 감당하기가 어렵다면 뱀처럼 피하라는 것이다. 뱀이라는 명사와 상징은 성경에서는 피하다 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면 된다.
예수는 뱀처럼 지혜롭게 행하라고 했다. 여기서 지혜는 피하는 기술을 말한다. 어려움이 왔다고 피하고 도망가고 피난처만 찾는다면 제자로서 너무 무기력하지 않겠느냐는 비난과 조롱을 피할 수 없을텐데, 항상 피하면 대수인가!
제자들은 겨우 예수의 산상설교와 예수의 사역의 본을 보았을뿐이다. 예수의 마음은 많이 아팠을 것 같다. 물가에 내 놓여진 어린 자녀들을 이리떼가 주인이 되어 있는 세상에 보낸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예수는 뱀처럼 지혜로워라, 뱀이 될 필요는 없지만 뱀처럼 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뱀은 피한다는 것 이외에 뱀에게 배울 것은 아무것도 있어서는 안된다. 뱀은 처음부터 예수의 적이었다.
그리고 뱀과 비둘기의 비유에서 경계해야 하는 것은 나와 교회의 이익을 위해서 뱀의 간교함과 비둘기의 평화를 동시에 소유하고 50 대 50 이라는 균형을 지향해서도 안된다. 예수는 반반씩 합쳐서 살아가라고 한 것이 아니다. 뱀은 뱀이고 비둘기는 비둘기다. 그러나 비둘기가 제자들에게 전부가 된다.
그런 제자들이 예수가 하는 일을 따라서 전도를 실습하다가 가져야 될 두 가지 기술을 가르친 말이 뱀과 비둘기 이야기이다. 지혜와 순결 그것을 말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예수 역시도 지혜와 순결의 사람이었다. 제자들도 그러면 된다, 그리고 교회도 그거면 된다. 순결은 무엇일까?
예수는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온다. 그때 하늘에서 비둘기 같은 성령이 그 위에 내려와 앉았다고 했다, 예수가 본 비둘기는 성령을 의미했다. 예수 역시도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예수의 뱀 같은 행동은 홀로 한적한 곳으로 피하여 아버지께 기도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의 말과 행동을 보고 예수를 자기들의 임금으로 옹립하려고 했다. 그때도 예수는 피하고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했을 때도 함구령을 내리며 피했었다.
제자들은 아직은 종이고 제자이다. 예수의 목표는 그래서 종이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이고 제자가 스승이 되게 하는데 있다. 이 일의 시작이 현장으로 전도를 내보내는 일이었다. 뱀과 지혜는 전도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예수의 설명이었다.
전도할 때 두 가지를 말했다. 잃은 양들에게 가라고 했다. 가서 평안을 말하고 그 평안을 받으면 그 평안이 그 집에 머무를 것이고 그 평안을 받지 않고 조롱하고 오해하고 무시하고 무관심하면 그 평안은 제자들에게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그러면 평안을 받지 않는 그들을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앞에서는 하나님께 맡겨두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수는 말하기를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었다. 전도는 영혼을 먼저 살이고 죽을 몸이 그날에 다시 살도록 마당을 깔아 주는 일이다.
전도를 받지 않으면 몸은 죽어 그저 흙으로 간다. 전도를 받지 않으면 소돔 고모라성 보다 더 처참해 질 것 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거라고 에스겔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하는 말은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 안에서 합당한 자들을 찾으라고 했다. 찾으면 그들과 함께 머물며 가르치고 대화하고 전하고 죄를 제거하고 세례까지 베풀 수 있으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전도하다가 모멸을 당하거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 성령이 할 말을 준다고 했다. 그 말은 무엇일까? 거기서도 평안을 말하는 일이다. 이것은 우편강도가 십자가에서 예수께 했던 말이다.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도 거기에 있게 해달라.
그러므로 예수의 전도는 피하기도 하고 피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전도는 후회는 없다. 전도는 그리스도의 평안을 전하는 일이고 그 평안은 샬롬이라고 하며 샬롬은 성경을 한마디로 압축한 말이기 때문에 그 평안을 받고 전도가 된 사람은 그 평안이 그의 남은 일생을 복된 길로 인도를 하게 된다.
전도는 나도 너도 모두 해야 할 일이다. 순결과 지혜는 전도안에서 작동하는 성경의 논리이고 힘이다. 그 길 만이 타락한 세계가 살 길이기 때문이다. 기회가 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산다는 말은 전도하며 산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순결은 전도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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