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세상의 경계선이 옛날처럼 확실하지 않고 모호하고 선명하지 않다.
죄의 경계심 조차도 스스로 타협하고 있다.
내 마음의 기준이 세상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성경 말씀이 멀리 있고 보지 않으니 그런 것이다.
복음은 한 주간만 놓쳐도 입안에 세상의 언어로 가득차게 된다.
세상을 사랑하고 믿음을 떠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서히 교회가 조금씩 멀어져 가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 온도가 떨어져가고 늘 뜨거윘던 찬송도 식어지고
내 마음의 고백도 무덤덤해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말씀도 메시지도 집중되지 않고 예배의 자리조차도 갈급하지 않고..
점점 나는 영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세상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죄를 지어도 슬퍼하지 않고 근성으로 회개하고 누구에게 복음을 말한 것도
오래 되었고 영적으로 둔해져 가는 것이다.
영적인 예민함이 없으면 나 자신조차도 의식하지 못한다.
내 믿음의 위기를 모르고 영적 불감증으로 스스로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악한 세상의 문화에 소극적으로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난 속에 핍박 속에.. 때론 죽을 병에 걸렸다면
매일 기도하고 긴장하고 주님을 결사적으로 메달려야 하지 않은가?
유혹은 이렇게 서서히 들어온다.
그 책임은 교인들 한테만 있는 게 아니다. 목회자들의 메시지도 두리뭉실하다.
세속화되어 명확하게 짙은 복음과 선과 악을 구분이 모호하고
사회와 이 나라의 현실을 편가름 말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점을 던져주어야 한다.
그래야 성도들이 고민하고 갈등하고 기도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아예 문제에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 아마 그것이 제일 쉬운 방법이고 교회 안의 어떤 불화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럴까?
성경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문화이다.
세상의 유혹은 인간 본능을 자극한다. 금방 물들고 통제가 힘들다.
그래도 우린 싸워야 한다. 혼자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고..
어떤 모임이든지 믿음의 공동체에서 도전을 받고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부부합창단도 노래자체에 집중보다도
교제 속에서 기도하며 영적 힘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가사와 멜로디 속에는 기도의 고백이 있고 신앙의 고백이 있기에…
우린 어쩔 수 없이 세상과 구별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 주일에 2시간을 만약 10년간 합창단에 머물렀다면 엄청난 기도의 삶을 살지 않은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6-17)
한주간의 시작 월요일.. 말씀으로 믿음으로 모두 승리하시길! 할렐루야!
서울 사랑의 부부합창단 정진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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