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수많은 민족 중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민(聖民)이 되는 영광을 얻었을까? 성민(聖民)이란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그들에게 그만한 자격이나 가치가 있었을까? 그들이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삶을 살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선택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어떠한 조건과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고 교만하여 반역하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까? 하나님 선택의 기준은 우리가 생각과 다르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聖民)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중에서 너를 자기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7:6-7)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적고 볼품없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 연약한 민족에게 임하셨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選民)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선민(選民)이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다.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숫자가 적은 민족이기 때문에 성민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숫자가 많다는 말은 “강함”이고 숫자가 적다는 말은 “약함”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의 기준이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의 나이는 80세 노인이었다. 그는 육체적으로도 “약함”이었다. 그의 재산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재력으로도 “약함”이다. 그가 지닌 모든 것은 처갓집 재산이었다. 굳이 모세의 소유를 따진다면 양을 치기 위해 나무가지를 꺾어 만든 마른 지팡이 뿐이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출애굽의 대업을 이루기 위하여 미디안에서 애굽을 향하여 출발할 때, 그 지팡이를 가리켜 모세의 지팡이라 부르지 않고 성경은 하나님의 지팡이라(출 4:20) 불렀다. 왜 쓸모 없는 모세의 마른 막대기가 강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는가? 비밀이 여기에 있다. 그 마른 막대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볼품없는 마른 막대기가 아니었다. 홍해를 향해 내어 밀 때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을 향해 내리칠 때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다.
바로는 이집트의 강력한 지배자였다. 바로는 “강함”의 상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왕의 지배를 받으며 무려 430년 간이나 노예생활을 했다. 이스라엘은 “약함”의 상징이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여러 재앙을 내리셨다. 하나님께서는 “강함”을 징벌하시고 깨뜨리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던 애굽의 고센 땅은 그 어떤 재앙도 미치지 않았다. “약함”을 보호하셨다. 심지어 애굽 전역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흑암이 사흘이나 계속되었을 때에도 고센지역은 광명으로 충만했다(출(10:23). “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
고센 땅에 거룩한자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애굽에서 가장 비천한 노예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불결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과 함께 하실 때, 고센은 이집트의 모든 곳으로부터 구별될 수 있었다.
황량한 벳새다 벌판에 여자와 아이를 제외하고 장정만 오천명이 넘는 거대한 군중이 모였다. 그들은 가난했고 배고파 먹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약함”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가난한 빈민들이었기에 그 많은 사람들 중 어린아이 한 명이 가진 것이라고는 보리떡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다. 어린아이는 “약함”의 상징이다. 오병이어(五餠二魚)도 “약함”의 상징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하였을 때 작은 어린아이의 손에 있었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를 가지고 장정만 5천명을 먹이고 12광주를 남기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시는가? 하나님의 선택받은 구별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성령이 임하시기를 원하는가? 해답은 “약함”에 있다. 그것을 위대한 사도 바울이 깨달었다. 사도 바울은 약할 때 강해질 수 있음을 알았다.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후13:9)
그가 깨달은 진리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3:9)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왜 강해지려고 하는가? 왜 이기려고 하는가? 왜 아직도 “약함”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가?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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