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아는 양은?
양은 참 무지합니다. 그리고 어리석습니다. 양은 길을 잃으면 돌아오지 못합니다. 개는 길을 찾아옵니다. 연어도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옵니다. 수천 수만 마일을 가더라도 찾아옵니다. 그런데 양은 못 찾아옵니다. 양은 자기 앞에 가는 양을 따라갑니다. 교회에서도 먼저 믿으시는 분들이 잘 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성도들이 잘 보고 잘 배웁니다. 먼저 왔다. 오래 되었다 하는 분들은 책임이 큽니다. 요령을 피울 줄 모릅니다. 앞의 양이 낭떨어지에 떨어지면 함께 떨어집니다. 그 정도로 무지합니다. 양은 재주가 없습니다. 호랑이도, 사자도, 코끼리도 다 서커스단에서 재주를 넘지만 양이 재주넘는 일은 역사 이래로 없습니다. 재주를 부리는 성도는 성도가 아닙니다. 양은 재주를 부릴 줄 모릅니다. 혹시 재주를 부리고 싶으셔도 재주를 부리지 마십시오. 재주 부리는 양이 되지 마십시오. 믿음 생활에 인간의 요령과 재주를 거둬 내야 합니다. 그래야 양이 됩니다. 순수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세상에서 하는 스타일대로 교회생활을 하시면 큰일 납니다. 양은 재주를 부릴 지혜가 없습니다. 뒤집어져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양은 매우 더러운 동물입니다. 그림 속의 양은 얼마나 깨끗하고 뽀얗고 탐스럽습니까? 옆에서 보면 그렇게 더러운 짐승이 없습니다. 냄새가 고약합니다. 악취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더럽습니다. 씻을 줄 모릅니다. 우리에게 영적으로 그런 더러운 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깨끗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한없이 더럽습니다. 그러니 남의 눈 속에 티를 보지 마십시오. 내 눈 속에는 더 큰 대들보가 있음을 기억 하십시오. 그리고 양은 공격형 무기가 없습니다. 뿔 가지고 받을 줄도 모르고, 발톱 가지고 할퀼 줄도 모르고, 이빨 가지고 물 줄도 모릅니다. 싸울 줄 모르는 것이 양입니다. 교회 안에서 싸우는 사람은 염소입니다. 늑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양에게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자기 목자 음성은 기가 막히게 알아듣습니다. 자기 목자 음성 외에는 어떤 짐승의 아름다운 소리도, 어떤 사람의 낯선 소리도 다 구별합니다. 자기 목자 음성의 휘파람 소리, 말소리를 그대로 알아듣고 따라옵니다.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목자 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 듣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음성 외에는 답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목자의 음성을 알고 듣습니다. (요 10:3-4)
2. 기름을 발라 주시는 하나님 (5절)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목자가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입니다.
양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서로가 부딪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머리에 상처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기름을 발라 줍니다.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입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다 다릅니다. 고향도 다르고 자란 배경도 다르고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생각도 다르고, 말도 다릅니다. 문화도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노아의 방주 같은 곳입니다. 한가지 같은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살다 보면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기 위함도 있지만 때로는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치료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상처 난 곳에 기름을 발라 주십니다. 치료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치료 및 예방을 위함입니다.
양에게 가장 큰 적은 파리, 쇠파리, 말파리, 사슴팔이, 진디 등이 있습니다. 양들은 발굽이나 꼬리로 파리를 털어 버릴 수가 없습니다. 특히 파리들은 양들의 코에 앉아 알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애벌레들은 양을 미치게 만듭니다. 여름에 어떤 때는 양들이 그들의 머리를 돌에 박는 것을 봅니다. 파리들 때문에 미칠 지경이 되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양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면 그 기름이 흘러서 코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그 코에는 파리가 알을 낳치 못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작은 것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목자가 하는 일은 기름과 유황을 섞어 양의 머리에 발라 주는 것입니다. 즉 곤충들을 쫓아내는 일을 합니다. 늑대 보다 더 골치 아픈 게 뱀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새로운 풀밭으로 가면 다니면서 뱀 굴을 찾아 그 앞에 기름을 뿌려 놓습니다. 그러면 뱀이 기름 때문에 미끄러워서 나오질 못합니다. 그리고 양들에게도 기름을 발라 놓으면 뱀은 접근을 안 합니다. 뱀이 올리브 기름을 아주 싫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으면 사탄은 접근하지 못합니다. 다윗이 “내게 기름으로 바르셨으니”라는 말을 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내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 상처를 치료해 주십니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 147:3) 예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어떻게 고치십니까?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줄 때에 예수님께서 무슨 붕대를 사용하여 우리의 감정을 치유해 주십니까?
1) 예배를 통해서 치료가 됩니다.
찬송을 할 때 고침이 따라 옵니다. 마음이 상심될 때에 교회에 오셔서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찬송을 통해서 치료해 주십니다. 사울이 귀신들려 머리가 아플 때에 다윗이 수금을 탄즉 사울이 상쾌히 낫고 악신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삼상 16:23) 찬송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예배에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말씀은 살아있어 영과 혼과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갭니다. 그래서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2) 기도 할 때에 치료가 됩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을 때는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않으면 자신의 몸에 손상을 끼치게 됩니다.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께 우리의 상처의 짐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 29:12-13)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내가 너희를 치료해 주리라. 다윗은 자신의 감정에 대하여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다 내어 놓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3) 봉사 헌신 섬김을 통하여 치료가 됩니다.
다른 상처받은 사람들을 돕는 것이 우리의 상처를 고쳐줍니다. 상처받은 다른 사람을 도울 때에 우리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사람들을 회복시켜 주고 재생시키는 모임에서 우리들이 겪은 바를 나눕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에 우리가 고침을 받습니다. 교회는 상처받는 사람들이 모인 병원과도 같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친교, 기도, 예배, 그리고 봉사를 합니다.
4) 주님과의 교제, 성도간의 교제를 통하여 치유될 수 있습니다.
비록 상처를 주고 받았을지라도 서로 교제를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기름을 발라 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예방까지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으면 회개하시고, 다른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았으면 주님께 치료해 달라고 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예방해 주십니다. 기름을 발라 주십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 담임)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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