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울이라는 사도
사도 바울은 35년간의 사역을 통해서 많은 교회를 세우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위대한 사도입니다. 목사가 되고나서 발견된 바울의 발자취와 그의 마음은 대단함을 깨달았습니다. 난 그를 닮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난 그의 사역에 만분의 일도 따라가지 못하는 목사일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마음만큼은 저 역시도 같다도 봅니다. 목회자의 삶이 40년을 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좋은 회사 다니다가 목회길로 들어설 때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정말로 그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없을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그들에게 주는 부담도 컸기 때문입니다. 자유롭게 자라질 못했습니다. 목사의 아들 딸로 산다는 것이 어린시절엔 힘든 일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부끄럽지 않은 목회자로 살아가려고 기도하며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 바울 사도의 빌립보교회를 향한 간절함을 나누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바울은 태어나면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이였습니다. 부모에 대하여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그가 베냐민지파라고만 소개됩니다. 베냐민지파라 하면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베냐민지파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랍비 가말리엘의 제자라고 알려집니다. 가말리엘 랍비는 당대 최고의 랍비였습니다. 최고의 스승 밑에서 공부한 수재요 천재인 바울입니다.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신앙심은 율법에 흠이 없는 대단한 바리새인이였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을 핍박하는데 앞장 선 사람이기도 하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집사인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선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본래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울이라는 뜻은 “큰 사람” 이란 뜻입니다. 아마도 부모님이 큰 사람이 되라고 베냐민지파의 초대 왕 사울의 이름을 따서 지어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면서 로마권에 복음을 전해야 하기에 로마식으로 바울이라고 개명을 합니다. 바울은 “작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개명을 통해서 바울이 얼마나 겸손하게 복음을 전하며 살려고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큰 사람이 아닌 작은 사람으로써의 삶을 살겠다는 그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바울 사도의 간절한 참 마음을 우리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2. 바울의 간절한 마음 : 사랑하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4:1-2)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에 옥에 티가 바로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의 다툼입니다. 유오디아 순두게의 다툼은 빌립보교회의 옥에 티였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사랑이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17)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으면 우리는 심판 받아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1-6)
기독교 최고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믿음의 최고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고전 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3.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4:13) 바울의 신학은 예수님 안에서입니다. “예수 안에서 (in Christ)”의 신학입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사역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형편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그런 것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참 사랑도 알고, 참 사랑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아멘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 사랑이라는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 뿐 아니라 전도 열매, 기쁨의 열매, 성령의 9가지 열매 등을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슥 4:6)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여호와) 신으로만 되느니라” 예수님 안에서만 성령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할렐루야!! 빌립보교회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 부흥하게 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심장(심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였습니다. 교인들끼리 사랑하고 친해지는 길이 밥같이 먹는다고 친해지는 것 아닙니다.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친해지는 것 아닙니다. 같은 학교에 나왔다고 친해지는 것 아닙니다. 각자가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밥 같이 먹으면 친해집니다. 그러나 어느 날 싸우고 헤어집니다. 왜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향사람끼리 친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대판 싸우고 헤어집니다. 왜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같은 학교 나온 사람들도 어느 날 대판 싸웁니다. 왜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섭섭한 일이 있어도,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정말로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됩니다. 내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용서 못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빌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립보 교회 개척 멤버는 세 사람이었습니다. 첫째는 자주 장수 루디아입니다. 두 번째는 귀신들려 점을 치던 여인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빌립의 감옥 간수장입니다. 루디아는 아시아인이고, 점하는 여종은 헬라인이고, 간수장은 로마인이었습니다. 루디아는 부유한 상인이고, 접치는 여인은 노예였고, 간수는 로마의 관리였습니다. 이들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신분이요 상종도 하지 않았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한 교회에서 하나가 된 것은 그들이 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예수님으로 사는 자 즉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아멘 (갈 3:28)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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