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야의 왕 고레스는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명실상부한 제국을 건설한 왕입니다. 바벨론은 약 300년 동안 튼튼한 제국으로 아프리카 일부 중동 지역을 지배한 국가입니다. 그 바벨론 제국이 300년만에 페르시야왕 고레스에게 쉽게 무너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70년만에 돌아오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바벨론이 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70년만에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고레스왕을 통해서입니다.
[고레스왕에게 보여주신 하나님 (이사야 45:1-7)]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바벨론성의 성문이 100개의 청동문)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고레스왕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70년의 바벨론 생활을 청산하고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는 약속을 고레스를 통해서 이루십니다. 아주 정확하게 70년입니다.
바벨론성은 감이 누구도 침략할 수 없는 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성을 무너뜨리시고 고레스왕이 점령하게 하십니다. 이 세상의 죄악에서 우리를 건져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창조하시고, 평안과 환란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데 까지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십니다.
1. 선한 목자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요 10:18)
미쉬나에 보면 삯꾼의 법적인 책임 한계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품군으로 고용된 목자는 양을 지킬 책임이 있다. 늑대 한마리가 공격해 온다면 양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두 마리의 늑대가 불가항력적으로 공격해 온다면 어떤 손해를 입어도 책임이 없다. 삯군은 양이 불구가 되거나 흩어지거나 죽은 것에 대하여 맹세만 하면 된다. 다만 잃어버리거나 도둑 맞은 것에 대해서는 보상의 책임이 있다.” 삯꾼은 양이 자기 양이 아니기 때문에 양에 대한 소유자로서의 긍지나 깊은 애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리가 오는 것을 보고도 도망칩니다. 양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망칩니다. 결과적으로 양은 사정없이 찢기고 흩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삯꾼이 아닙니다. 양의 주인입니다. 양은 곧 주님의 재산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소유하신 긍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양에 대한 책임, 양에 대한 애정이 있습니다. 이리가 와도 절대로 도망치지 않습니다. 자기 목숨을 걸고 양을 지켜냅니다.
그 결과 양은 아주 안전합니다. 털끝 하나도 상하지 않고 온전하게 보호 받습니다.
주님은 우리 육체를 보호해 주십니다. 온갖 사망의 골짜기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죽을병에서, 교통사고에서, 전쟁터에서, 강도에게서도 지켜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재산도 지켜주십니다. 도적이나 사기꾼이나 악한 자들에게서 불의의 재앙에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을 지켜주시는 일입니다. 생명을 지켜 주십니다. 명예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지켜주십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사단의 유혹이 제아무리 심하고, 죄악이 사방에 있다 해도 주님은 넉넉히 우리 영혼을 지켜주십니다. 양들에게 대해서 무한책임을 지는 목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선한 목자 예수님은 양들을 잘 아십니다.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요 10:14-15)
자기 양 하나 하나의 형편을 잘 아십니다. 그 성품을 아시고 마음에 품은 생각을 아십니다. 나다나엘의 진실하고 의로운 인격을 한눈에 알아 보셨고 (요 1:47) 가룟 유다의 마음에 품은 배신의 감정을 아시고, 나무 위에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기 원하는 삭개오의 마음을 아시고, 주님을 세 번씩 부인할 베드로의 마음을 아시고, 돈을 사랑하는 부자 청년의 마음을 아시고, 누가 크냐고 논쟁하던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주님을 비판하는 바리새인들의 속마음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머리털을 헤아리시며 아픔과 고통을 아십니다. 주님의 옷깃을 만진 12년 혈루증 여인의 아픔을 아셨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사람의 갈망을 아셨습니다. 수가성 여인의 삶의 갈증을 아시고, 다소 사람 사울의 열심을 아셨습니다. 주님이 양들을 잘 아시기 때문에 양들에게는 무한한 유익이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더 잘 알까요, 부모가 자식을 더 잘 알까요? 부모가 더 잘 아는 것이 당연합니다.
목자 없는 사람들은? 눈에 힘이 없고 어깨는 축 늘어지고 고개는 숙이며 발걸음에는 힘이 없고 몸단장도 전혀 하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크게 흥분하고 신경질을 잘 부린다고 말합니다. 좋지 못한 과거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시련당한 일,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일, 애써 모은 돈을 사기당한 일, 죽은 아내, 남편, 자식을 생각하고 자꾸 우는 사람들,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 간 사람들. 그들 속에 여호와가 목자가 될 때 그들은 어두운 마음을 돌이킬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를 안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비록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평안한 동산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안식의 동산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왜?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초라한 상이 아니고 잔치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를 극진히 대접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해 주십니다. 왜? 선한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양과 목자는 떨어 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목자 삼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 담임)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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