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한 사람 사람을 놓고 보면 못난 사람이 하나도 없고 다 자기가 옳고 잘났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인간은 누구나 주인공의식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내가 먼저이고 내 이익이 먼저고 내 생각이 옳고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은 없고 나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내 주장이 관철되지 못하고 묵살당하면 결국 관계가 깨어진다.
이런 모순된 생각이 왜 발생할까?
자기중심(自己中心)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 의가 강하고 자기 중심의 사람은 세상을 올바로 보지 못한다.
자기 자신을 올바로 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허물에 집중하게 된다.
이것이 요나의 모습이다.
요나는 박넝쿨을 준비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아서 졸다가 자기만족에 빠져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사명을 잊어버렸다.
그런 요나를 깨우시려고, 박넝쿨을 준비해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려고, 벌레를 보내어 고통을 허락하셨다.
그런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고 현실이 어려우니까 성질부터 부렸다.
요나에게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고 “내 나에게 성을 내느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요나가 하나님께 감히 대항을 했다.
“이런 고통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소리친 것이다.
이것을 두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한다.
요나가 화를 낸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요나는 자신의 유익이 사라지자 성을 내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중심이 강하고 자기의 의가 강하고 자기만족에 빠져 살면서 자기 우월주의에 빠져 자신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만 탓하고 판단하는 요나를 깨우쳐 주셨다.
그러자 요나가 하찮은 박넝쿨을 아낀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니느웨 성의 죄인들을 아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운동장 한 바퀴를 돌면 얼마나 넓고 큰지 모른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옛날 다녔던 초등학교를 가 보면 그처럼 크고 넓었던 운동장이 아주 조그만 원 같이 보인다.
옛날에 살던 집 뒷산이 그렇게 높았었는데 훗날 어른이 되어 가보면, 아주 작은 동산 같이 보인다.
옛날 살던 집의 담벼락이 키가 작아서 밖을 내다볼 수 없었던 것이, 훗날 어른이 되어서 가 보면, 그 높게 보였던 담벼락이 허리에 차고 밖을 훤히 내다 보인다.
담벼락을 허물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키가 크면 다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등산을 가면 등산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올라가는 산이 보이지 않는다.
30분을 올라갔는데도 자기가 올라가는 산의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또 30분을 더 올라갔는데도 아직도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산속에서 계속 산길을 올라갈 뿐이다.
눈 앞에 있는 숲만 보인다.
그런데 산 정상에 올라 확 트인 사방을 산 위에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무슨 말인가?
산에 올라가면 시야가 넓어 진다.
요나가 깨달은 건 내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판단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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