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 와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목사님은 그 청년을 뒷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벼랑 끝에 있는 큰 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에 올라가서 나뭇가지에 매달리라고 하였습니다. 청년은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나무에 올라가서 나무 가지에 매달렸습니다. 이때 목사님이 청년에게 말하기를 이제는 그 손을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청년이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수십 미터나 되는 벼랑 아래에는 시퍼런 강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붙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놓기만 하면 당장에 떨어져서 바위에 부딪치고 강물 속으로 떨어져 죽을 것 같았습니다. 청년은 “목사님 이곳에서 나를 아무도 모르게 죽일 작정이십니까?” 하며 화를 벌컥 냈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청년을 잘 부축을 하여 안전한 곳으로 내려놓고 하는 말이 “형제가 내게 물은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형제가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으면 살고 놓으면 죽을 줄 아는 것 같이 형제가 예수를 믿고 의지하며 붙잡고 있으면 살 수 있고, 예수를 놓으면 죽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청년은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여 황금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 빛과 소금의 삶을 사는 사람 (마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믿음은 수직적 관계가 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정립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나는 하나님의 자녀. 이 관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 성령님은 나의 안내자. 믿음은 수평적 관계도 잘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 관계가 정말로 중요합니다.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지역사회와 관계도 잘 정립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구제를 하는 곳은 아니지만 구제도 해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무디 목사님이 성도들과 함께 1주일간 노방전도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아무에게도 예수 믿으라고 말하질 않았습니다. 1주일 내내 그랬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왜 예수 믿으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동네를 다니면서 넘어진 아이 일으켜 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추운 사람에게 옷을 건네주고,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이 전도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무디 목사님과 성도들과 말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삶으로 전도를 한 것입니다. 이것이 빛과 소금의 삶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두운 곳을 밝게 비취는 빛입니다. 상하고 썩어져 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소금입니다. 맛없는 세상에 맛을 내는 소금입니다.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는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지역 사회를 위하여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한인회도 돕고, 노인회도 돕고, Homeless People 도 돕고, 누구라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자들을 도와야 합니다. 왜?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예수님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교회는 다르다. 믿는 사람 다르다” 는 것을 보여 주어야 전도가 됩니다.
프랑수아 살르는 ; “큰 선행은 설탕과 같고 작은 성실은 소금과 같다. 설탕은 탁월한 맛을 가지고 있지만 사용 빈도는 적다. 그러나 소금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큰 선행은 드물게 발생하는 것이지만 작은 섬김은 날마다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소금같이 많이 필요치 않지만, 뿌려져도 자신이 녹아버리고 보이지도 않지만 세상에 맛을 내는데 꼭 필요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삶은 칭찬을 들을 만 했습니다. (23-79년) 로마의 정치인이요 군인이였던 총독 플리니우스가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잘 나타나있습니다. 즉 그는 박해로 인해 비밀리에 모이는 기독교 공동체를 은밀히 조사해 본 후 “그들은 법도 잘 지키지만 법 이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이라고 보고함으로써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의 영적, 윤리적 삶이 칭송 받을만 했음을 로마 정치가로서 입증시켜 주었습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한 성도는 세상의 법을 초월해서 살게 되므로 온 백성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백성에게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를 부끄럽게 합니다. 교회와 성도가 믿지 않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야 매력이 있고 희망과 도전을 주게 됩니다. 그들이 우러러 보고 존경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인가 감동을 주고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고 싶고 예수님을 믿고 싶은 동기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 내에서의 칭찬은 물론 사회와 교회 밖에서의 칭찬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을 품고, 세상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영향력을 끼쳐서는 안 됩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각 분야에서 지도자가 되어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정치가, 행정가, 사업가, 군인이 되어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꿈과 비전과 사명을 가진 만큼 강해지고, 담대해 지고, 넉넉해 집니다. 물질이나 사람이나 권력을 따라 살지 말고 사명을 따라 사십시오. 이익과 자리를 계산하지 마십시오. 사명을 따라 살면 필요한 만큼 물질과 사람과 권력도 따라옵니다. 사명 안에 확고히 서있으면 나의 작은 몸짓이 큰 의미를 가집니다. 보이는 열매가 적어도 답답해하지 마십시오. 내가 얻는 열매가 적다면 내 후손이 살아갈 길을 닦는 것이라 생각하십시오. “사명의 길”을 따르는 것은 “사망의 길”을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사명에 칭찬과 축복이 있습니다. 모든 독자분들에게 당부합니다. 구경꾼이 되지 말고, 말꾼이나 싸움꾼도 되지 말고 일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 담임)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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