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독일의 나찌군이 유대인들을 무참히 학살하던 2차대전 말 이탈리아의 한 포로수용소에서 독일군에 붙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던 일가족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유태인 일가족이 독일군 수용소에 끌려갑니다. 수용소에서 아빠와 엄마가 헤어지고 아빠가 한 5살 정도 된 어린 아들과 함께 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수용소의 그 무시무시한 분위기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불안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가스실로 끌려가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 불안한 수용소 생활에서 어떻게든 아이가 독일군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영문도 모른 채 수용소에 끌려온 아들과 놀이를 합니다. 아이가 숨바꼭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아버지는 수용소 안에서 아이와 숨바꼭질 놀이를 합니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아빠와 숨바꼭질 놀이를 합니다. 아이에게는 이런 제안을 합니다. “네가 아빠에게 안 잡히도록 잘 숨어 있으면 탱크를 태워주마.” 아이는 탱크가 타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재미있게 숨바꼭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숨바꼭질을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아이는 점점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아빠는 “탱크를 타고 싶지 않느냐”고 아이를 달래서 다시금 아이로 숨바꼭질을 하게 합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불안함 때문에 눈물을 흘리다가도 아이 앞에 가기만 하면 지금의 상황이 숨바꼭질하는 놀이 시간이라고 인식 시켜주기 위해서 항상 웃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독일군에게 끌려가서 사형을 당하고 맙니다. 아버지가 끌려가 사형을 당할 그 때까지도 숨바꼭질을 하고 있던 아이는 끝까지 숨어 있다가 독일군을 점령하고 들어온 미군에 의해서 발견되어 살아납니다. 그리고 수용소를 나갑니다. 그것도 미군 탱크를 타고 수용소에서 빠져나옵니다. 아이는 아빠가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용소에서 구출된 그 아이는 장성해서 어렸을 때를 회상하며 글을 씁니다. 그 때에는 왜 아빠가 그렇게 오랫동안 숨바꼭질 놀이를 하자고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사랑하는 자식을 살리기 위한 아빠의 고통스러운 마음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맨날 숨바꼭질을 하며 어두운 곳에서 숨어 지내야 하는 게 재미없고 불평스러웠지만, 자신을 살리고 죽어간 아빠, 그리고 약속한 대로 탱크를 타게 해 준 아빠의 사랑을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2.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는 하나님
양들에게는 묘한 습성이 있는데, 생리상 다음 4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주지 않는 한 절대로 눕지 않으며 목자라도 양을 눕게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첫째, 양들은 본래 겁이 많은 동물이기에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누우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둘째, 양들은 집단 안에서 사회적 행동을 하는 동물이기에 “저희들 간에 싸움이 쉬지 않으면” 누우려 하지 않는다.
셋째, 만일 파리나 기생충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받는 경우에도 양들은 누우려 하지 않는다.
넷째, 배부르게 꼴을 먹지 않는 한 양들은 누우려 하지 않는다.
“양들이란 일단 자신의 배가 불러야만 자리에 눕는 법이다.” 양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 양을 돌보고 인도하는 목자에게 달려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양이란 원래 겁이 많은 동물인지라 토끼만 바스락거리며 뛰어나와도 놀라는 짐승인데 이러한 양이 놀라지 않고 푸른 초장에 누워 뒹굴뒹굴 놀며 쉴 수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목자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윗은 자신을 양으로 표현하면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양과 같은 자기 자신을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신다고 표현하며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들은 욕심이 많지만 양들과 양들 사이를 잘 지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싸우지 않게 하여 마음을 평안하게 하기에 양들은 푸른 초장에 누울 수 있으며 어떻게든 목자는 양들이 배부르게 되도록 양들이 스스로 풀을 뜯어먹어 배부르게 하든지 아니면 양들이 뜯어먹을 풀이 없으면 풀을 구해서라도 양들을 배부르게 하든지 간에 그렇게만 하면 양들은 푸른 초장에 눕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이 한곳에 자리 잡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은 양들 때문입니다. 한 지역에 와서 풀을 먹고 풀이 다 마르고 없어지면 또 푸른 풀밭을 찾아 다닙니다. 오로지 양들을 위해서입니다. 이런 광야생활을 경험한 다윗이 한 고백은 “하나님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대인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불안이나 공포가 있다고 합니다. 가난에 대한 공포입니다. 실패에 대한 불안입니다. 질병에 대한 공포입니다. 노후에 대한 불안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양은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모르는 움푹 들어간 곳에 가서는 혼자 뒤집히는 일이 있습니다. 뒤집히면 배에 가스가 차는데, 가스의 압력으로 몸이 퉁퉁 부어 오릅니다. 호흡장애를 일으키고 먹은 풀을 소화하지 못해 배가 딴딴해 집니다. 뒤집힌 상태로 그냥 두면 더운 날에는 30분 이내에 죽는다고 하는데, 죽지 않고 버틴다 할지라도 독수리나 사나운 짐승의 먹이가 됩니다. 양은 뒤집히면 절대로 혼자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는 반드시 목자가 앞에서 양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이렇게 하십니다. 그냥 대충 인도하거나 위험스러운 깊은 웅덩이 근처로 인도하거나 무지막지 하게 뒤에서 몰고 가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언제 양이 뒤집힐까요? 여기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먼저 양은 우묵하게 파인 곳에 눕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둥그렇고 우묵하게 파인 적당히 편안한 땅을 택하여 눕다가 잘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경우는 양의 몸에 난 털 때문이라고 합니다. 털이 길면 진흙과 똥이 가시 돋친 풀이나 가지에 들러붙게 되면 쉽게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경우는 살이 너무 쪄서 뚱뚱한 양이 잘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이 잘 넘어지지 않도록, 움푹 파인 웅덩이는 메워주고, 수시로 양의 털을 깎아주고, 양이 너무 뚱뚱 해지지 않도록 돌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고 푸른 초장에 눕게 해 주십니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 담임)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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