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이 어머니의 나라라면, 천국은 아버지의 나라다. 모국이 땅의 나라라면 천국은 하늘 나라다. 두 나라는 어머니의 품에서 믿음으로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어머니의 품에 있다. 생명도 거기에 있고 구원도 그 안에 있다. 모국은 천국을 담는 그릇이며 구원도 믿음으로 받는다.
성경의 첫 약속은 복을 받아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어찌 문화명령만이겠나! 문화명령은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사고, 재산 만들고, 자녀 키우고, 뭔가를 물려주는 일이다. 이것 보다도 믿음이 먼저다. 이것을 믿음명령이라고 할까! 성경은 믿음명령의 책이다.
성경이 만물을 창조하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람에게만 유일하게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에 가까울 정도였었나보다. 뱀은 이것을 문제 삼았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뱀이 가장 간교했다. 하나님이 사람을 특별하게 지으시고 사람하고만 대화를 나누시는 그 현장을 뱀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뱀은 하와에게 말을 걸었고. 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를 먹지말라고 하시더냐?고 물었다.
선악과를 따 먹었다. 뱀은 하나님의 첫 명령을 비틀었다. 속인다. 거짓말을 한다. 하와가 유혹에 넘어갔다. 뱀의 말을 먹었으니 하와는 뱀이 된 것이다. 간교해졌다. 시기와 질투와 핑계와 두려움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죄와 사망과 허물과 멸망이 하와의 주인이 된 것이다.
추방된 하와는 가인과 아벨의 어머니가 되었다. 자식을 낳으면 낳을수록 자식들에게 죄가 되물림 되었다. 여자의 욕망은 그것이 뱀의 소욕임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는다. 이것이 문화의 욕망이고 가나안의 문화였고 인류가 되었다. 죄가 잉태하여 사망을 낳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인생은 짧을수록 좋고 이 짧은 인생을 사는 날 동안에 예수 믿고 믿음 안에서 화살처럼 빠른 인생을 소비해 버리는 편이 지혜가 된다. 믿음없으면 죽음의 시간을 좀더 길게 사는 것 뿐이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아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니다. 그것이 사라에게는 슬픔이었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복이었다. 하늘의 별,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육신의 후손들을 다시 낳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흐름은 이미 홍수로 바벨탑으로 두 번의 실험으로 철저하게 끝났기 때문이다.
주의 천사가 등장하여 진짜 하늘의 어머니를 만든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어머니요, 어미요, 애미다. 그것도 노인들에게서 일어난 일이다. 웃기기도 하고 이분이 하나님인가 생각하면서 허탈감이 들기도한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 지나간 일로 여기고 싶다. 그러나 이 일로 인생도 웃고 사라도 웃고 아브라함도 웃는다. 첫 약속의 아들의 이름이 웃음이라는 뜻의 이삭이었다.
사라는 온 열국의 어머니라고 했다. 첫 어머니다. 믿음의 어머니다. 성경의 어머니의 기준이고 세상에게도 어머니의 기준을 준 것이다. 성경의 어머니상이 사라다. 사라의 인격이나 성품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왜 그럴까? 믿음이 오기 전에는 사라도 하와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사라는 그 후 믿음으로 살았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우리가 육신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방법은 믿음을 얻어서 믿음의 삶을 잘 살아는데 있는 것이다. 하와는 망했고 사라는 흥했다.
그 믿음이 사실인 것을 리브가와 라헬과 한나와 성모 마리아의 경우를 통해서 입증했다. 하나님은 믿음의 어머니를 창조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죄를 이기는 길은 창조된 믿음으로 사는 것 뿐이다. 이것이 거듭남이고 부활이다. 믿음은 전혀 다른 집을 짓는다. 그러니 사람이 하나님 말고 딴 마음을 품었거나 두마음을 가졌다면 그 무너짐은 불 보듯 뻔하고 아무 대책이 없게 된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는 시온과 예루살렘이다. 시온에는 율법이 있다. 예루살렘에는 주의 말씀이 있다. 율법의 어머니는 백성들을 사랑한다 하면서 억압하고 구속한다. 율법은 세상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는 가시 울타리이고 믿음의 그림자이다. 사람들은 율법의 구속을 피하여 가시 울타리를 넘어 도망간다. 시온의 딸들은 율법을 버렸다. 이럴 경우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개입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주인이자 보호자다. 예루살렘을 바벨론으로 옮긴다. 바벨론이 어머니가 된다. 주의 말씀이 바벨론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있는 곳이 어머니다.
어머니가 아니고 여자의 일생으로만 살거나 그냥 여자로 사는 사람들이 인류의 70%가 넘는다. 착하고 희생적이고 너그럽고 사랑이 많다. 낳으시고 기르신 것은 맞다. 이것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믿음을 가진 어머니가 사라의 후예다. 사라의 후예는 그래서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면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다. 우선 성경은 부모를 동등하게 보고 있다는 것과 생명의 문제는 영생과 직결된다. 어머니는 하나님 아버지의 좋은 것을 품고 있는 존재다. 어머니는 그 좋은 것이 일하도록 잘 품고 낳고 믿음으로 기르면 된다. 그러므로 부모는 말씀 안에 있는 믿음의 부모를 예언한 것이며 바울은 이 말씀을 그대로 교회에 적용시켰다.
새 예루살렘을 어머니라고 지칭했다. 새 어머니에게로 부터 새 말씀이 나온다는 뜻이다. 예루살렘을 교회라고 본다면 새 예루살렘은 새교회라고 봐도 좋은 것 같다. 거기에는 믿음의 어머니들이 모여 있다. 믿음의 말씀들을 듣는다. 믿음의 말씀들을 가지고 있다. 믿음의 말씀들이 믿음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진리가 아니있고서야 어떻게 믿음이 꿈틀거릴수 있을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에게 손을 얹게 한다. 믿음으로 산을 옮긴다. 믿음은 어떤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게 한다. 믿음은 정말이지 성경의 그 기이한 유산들을 한몸에 담고 사는 일인교회가 된다. 마더스데이에 믿음의 어머니를 찾는다. 믿음의 어머니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이라도 믿음으로 믿음의 어머니를 찾는다.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살고 죽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누구보다 가장 극적으로 경험한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이고 그리스도의 사도들이었고 모세와 다윗 역시 그렇다. 믿음의 어머니는 잠언31장의 현숙한 여인처럼 믿음에 취하고 믿음에 흥분되고 믿음에 걸쳐서 밤낮을 사는 살아있는 믿음의 어머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간다. 산다는 것! 인생을 돌아보고 인생을 찬미하거나 인생을 후회하는 일은 그만하고,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바라보고 위로부터 오는 참 자유를 만나서 믿음의 어머니로 풍성하게 살아가자는 말이다. 새 말씀으로 재창조된 믿음의 어머니는 자유를 이해한다.
새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성령의 말씀을 의미한다. 성령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로도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의 절반인 모든 여자는 어미가 되어 말로 글로 할 수 없는 끝없는 길을 살아간다. 견딤보다는 믿음을 만나는 일이 우선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을 비틀었던 뱀들이 믿음으로 사는 어머니인 교회를 허물려고 그 기름처럼 매끈매끈한 혀를 낼름거리고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나갈 줄을 모르고 기도하는 교회를 비웃고 조롱하고 그런다. 그리고 용, 짐승, 우는 사자와 거짓말의 혀까지 총동원하여 교회의 기둥뿌리마저 뽑아가려고 혈안이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한다. 믿음의 어머니를 찾는다. 믿음의 품이 넓고 깊은 어머니의 기도가 그리운 날이다. 믿음의 옷을 잘 차려입은 어머니를 찾고 그 어머니를 세상에 보낸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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