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의 몸이 내 몸이 되고 내 몸이 예수의 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온 천지 만물들이 되고 싶어 하는 꿈이다. 이것은 주 예수가 오신 단 하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성경은 이것을 기록했으며 이것을 온 세상에 요구한다. 세상 역시도 이 일을 가장 좋아했으나 실패 했다. 그래서 세상은 세상 끝날까지 그 반대편에 선다. 결국 누가 먼저 예수의 몸이 되는 그 하나의 목표에 도착하는냐에 인생은 달려있고 인생은 그래서 짧기도 하지만 영적예술이기도 하다.
성경은 사람만이 하나님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망가졌었다. 첫사람 아담의 회복은 빠를 수록 좋은 일이었다. 모든 만물들이 그 회복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때문이다. 이것은 바울의 통찰이었다. 예수와 내가 한몸이 되기위해 모두가 가야할 길이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 그리고 에덴에서 추방되었다. 하나님과의 일상이 다 깨진것이다. 뱀에게 넘어갔고 죄와 죽음과 고난과 질병과 불안과 원망의 세상으로 넘어갔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공동책임이었다. 둘이 한몸이었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 중에 누가 먼저 죄를 지었냐를 묻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자와 여자는 아담과 하와가 부부가 되기 전부터 하나였다. 부부의 두 마음은 망하는 길이다. 모두가 길을 잃었다.
그 이후 사람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없는 소경으로 살아가야 했다. 모두가 육체가 된 것이다. 단지 인생은 인생일 뿐이다. 인생은 하나님께 가는 길을 알수도 찾을 수도 없다. 육체로 살다가 인생으로 마치는 것을 운명이라고 했다.
이렇게 된 것은 원수 때문이다. 원수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막았다. 이 일을 위해서라면 원수는 무슨 일이든지 다한다. 원수의 하는 일이 이것이다. 원수에 막히면 인생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이 없고 하나님의 특별사면이 있어야만 돌아갈 수가 있었다. 주 예수 오셨을때는 예수께로 못가게 하는 일을 했다. 지금은 성령을 알지 못하게 한다. 기다림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조상 아담의 완전 멸망 이후에 아벨과 에녹과 노아만이 하나님께로 참으로 돌아간 하나님의 첫 VIP였다. 길을 조금씩 보여주었다. 아브람이 그 일을 이어갔다. 그것이 믿음이다. 믿음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이다. 이 길 이외에는 딴 길이 없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절망을 만든다.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돌아가는 가장 좋은 길은 믿음의 길 그 길 뿐이다!
구약성경은 그 길을 이렇게 알리기 시작했다. 레위기의 제사법들로 알렸다. 레위기는 유대인들의 성경 교과서 중에 첫 번째로 치는 책이다. 모두 외우게 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을 읽으면서 성경을 불태워 버리고 싶고 원수를 죽이고 싶은 분노가 치밀어도 인생이 견뎌야 하는 이유는 허락받지 않는 분노가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견디기만 잘해도 생명책에 기록된다. 욥의 인내가 그 증거다. 양들은 분노를 내는 법이 없다. 사람은 분을 쉽게 낸다. 한순간에 망한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했다.
하나님은 분노 대신에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제사를 사이에 두고 너와 내가 만나자는 것이다. 하나님이 먼저 화해를 시도했다. 추방하신 하나님의 엄위와 추방된 아담과 가인의 분노를 제사 안에서 풀려고 하신 하나님이다.
섭섭해도 서운해도 원수는 물러가라고 고함치면서 하나님께 모든 경우에 더 가까이 갈 때 아담 이후에 우리를 떠나지 않는 분노와 욕심과 자기 의와 죄와 사망은 떠나고 긍휼을 입게 된다. 이런 새로운 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 우리는 좌절하지 않는다. 제사의 위력이다.
제사는 하나님의 분노를 쉬게 한다. 인생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 ‘내년 이맘때 아들이 있으리라!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하라!’ 주의 천사가 전한 말 한 마디가 아브라함과 사라를 열국의 부모가 되게 했고 세상에 희망의 불씨를 주었었다. 그들이 그 말씀을 믿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모 마리아에도 똑같이 했던 말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런 영적인 패턴의 임재가 모든 분노와 사망과 인생의 고질병인 탐욕을 멈추고 주 예수의 몸이 내 몸이 되게 하고 이 천한 몸이 주 예수의 몸이 되게 하는 첫 단추가 된다! 이 패턴이 믿는 자에게 적용될 때를 거듭남이라고 말하고 구원의 시작이라고 부른다.
제사는 예배의 그림자다. 향을 올려드리는 일이다. 하나님은 영이셔서 그 어떤 것도 받지를 않으시고 받지도 못하신다. 하물며 물질에 관심이 있으실리 없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흠향할 만한 제사가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제사는 부르르 떨며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주 예수는 모든 두려움 중에서도 십자가를 먼저 졌다. 당대의 시각에서는 주 예수의 제사는 세리와 창녀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는 불법제사였다. 그러나 흠향되었다. 12 제자들도 돈 많고 부자인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성령의 인도를 받았을 뿐이다. 흠향되어야 한다.
그래서 제사는 당시에 사막과 광야나 길가 어디에서나 바람에 떠돌아다니는 떨기나무, 나감향 소합향, 풍자향나는 식물들에 유향을 입혀 올려 드리곤 했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바람에 불려다니고 들풀처럼 나오는 그 향료들에 내 마음도 함께 태워드리면 주께서 좋아하시는 향기가 난다고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그렇게 타는 들풀들에 기름을 발라 태우면 그 냄새를 하나님 우리 주께서 맡으신다는 내용이 레위기의 핵심이다. 그래서 제사는 주 하나님께서 향기를 맡게 하시는 일이다. 이것이 제사법이었다. 그리고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한 다윗이다. 이 찬양은 주 예수의 십자가 제물로 완성된다. 맡을 수 있는 향기가 없음으로 인해 단 한 순간도 분노를 쉬지 못했던 하나님의 분노를 일순간에 사라지게 한 것은 그 한 사람의 제물됨에 기인했다.
주 예수의 이름이다. 이것이 향기의 힘이다. 그래서 모든 만물들의 기도와 예배의 출발은 먼저 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보라는 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듯이 영광을 돌려 놓고 울든지 웃든지 하자는 말이다. 계시록에 보면 제사는 향기로운 성도들의 기도라고 말했다. 기도는 소중하다. 천사가 금대접에 담아 하늘로 들고 올라갈 만큼 정도는 된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오늘의 기도와 부르짖음이 지금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 일로 인해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었다. 사래도 사라가 되었고, 시몬도 베드로가 되었고 야곱도 이스라엘이 되었다.
우리도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다 보면 수천 년 동안 똑같은 방식으로 증명된 믿음의 일들이 오늘날도 똑같이 증명이 된다. 주 예수는 우리의 기도를 믿음으로 연결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기도는 응답이 된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 에게로 돌아간다. 아멘. 떠날 때는 내것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만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 좋다. 전대나 지팡이 조차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좋아할만한 것이 아무것이 없게 보여도 먼저 기도 제단에 믿음으로 자신을 드리는 자가 복 있는 자다. 세상을 떠나 더 나은 본향에 이르기 위해서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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