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우라 아야꼬의 소설제목과 비슷하게 들릴수도 있겠다. 지난 주에는 맥알렌도 영하권에 있었다. 일꾼들은 농장에 군불을 피우며 겨울 수확에 한창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집 앞 뒷마당 식물들에게 옷을 입혀주기도 한다. 말들도 꽃들도 옷을 입었다. 도시가 빙점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화씨 32도와 섭씨 0도가 비슷하다고 했다. 빙점이다. 빙점을 제로라고 생각해 보자.
빙점은 모든 것을 제로지점에서 생각하게 한다. 제로라는 숫자는 뺄셈이 없다. 곱셈도 안된다. 덧셈만 있다. 그래서 빙점은 더하기 신앙을 말하기에 아주 좋은 지점이다. 감사하다..
0도의 날씨와 빙점과 원점이 서로 오버랩되는 것 같다. 군대 시절 사격 배울 때 영점조준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여성들에게는 낯설지도 모르겠지만 군기가 바짝 들지 않으면 영점조준에 실패한다.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듯이 그렇게 집중하다 보면 영점이 조준된다. 가늠쇠와 가늠자 그리고 표적이 일치되면 숨을 멈추고 견착상태로 방아쇠를 부드럽게 당긴다. 빙점이 타켓을 적중시킨다. 가장 군기가 쎈 시간이 사격훈련시간이었다. 그 어떤 병사라도 딴 생각을 하게 되면 오발탄으로 인해 문제가 심각해진다. 머리박아! 얼차려! 좌선 정열 이상무! 우선 정열 이상무! 그리고 일제히 사격을 한다. 군기가 곧 빙점이 된다. 빙점은 그래서 합격과 불합격의 경계선이다.
빙점은 온도의 바닥같은 느낌도 있다. 인생 바닥이면 어떠랴. 그러나 영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 이제 바닥을 치고 오를거라는 당연한 기대는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듯한 빙점의 시간에 바닥만 보는 것 보다는 온도계 전체, 신앙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삼으면 좋을 것 같다. 예수는 아버지께서 온전하시니 너희도 온전하라고 했다.
신앙에도 빙점이 있다. 신앙의 빙점은 끝을 알게 한다. 주께서 세상 끝에 관하여 두 가지를 말씀했다. 세상 끝날을 말하면서 아직은 세상이 끝은 아니라고도 말했었다. 끝없는 세상 같은데 끝이 있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는 세상의 끝에 오셨었다. 그 때 세상은 예수가 마지막 때 오신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예수를 죽였다. 이 예수를 죽였을 때 세상은 끝난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와서 예수는 완전한 끝을 말했었다. 이제 그 끝은 십자가의 죽음과 같은 그런 끝이 아니고 죽음없는 영광의 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영적 빙점의 희망이다.
예수는 죽음의 빙점에서 나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짓말처럼 그 끝은 계속되고 있다. 완전한 종말이 너무도 오랜 세월동안 연장된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한사람까지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예수의 기도 덕분이다. 다른 해석이 안되는 것 같다. 종말을 재촉하는 징조들이 뉴스를 타고 세상을 시시각각으로 힘들게 한다. 그러나 끝날이 오기까지 세상은 아무도 그 끝을 좌우하지 못한다.
예수는 세상 끝날에 대하여 한번 더 말씀하셨다. 한번은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기를 청한 적이 있었다. 예수는 대답했다,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반문한 것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표적을 좋아했었다. 홍해가 열리고 죽은자가 살아나는 기적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시대에 말이라도 잘 알아들었어야 했는데 예수의 말에는 관심조차 없을 만큼 어두운 세상이었었다.
그들에게는 모세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모세도 아니었다. 자신들의 삶의 방식이 법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예수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던것도 십분 이해가 간다. 예수도 수 많은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었지만 결국 예수는 죽임을 당했다. 천국이 사람들 앞에서 걸어다녔어도 사람들은 분별하지 못했었다.
성령은 예수가 말한 천국을 다시 말하는 하나님의 영이다. 성령은 영이기 때문에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 박힐 수는 없다. 그때 예수가 말했던 그 끝을 오늘날에는 성령이 대신 말할 뿐이다. 각자에게 말한다. 그리고 이 성령은 듣는 이들에게 종말을 준비하는 삶을 살게 한다. 이제 우리가 살 차례다. 영적 빙점은 이런 생각들을 다시 하게하는 기회가 된다.
완성된 종말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는 두가지의 믿음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내의 신앙과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 인내는 말씀아래 있으라는 뜻이다. 말씀의 인도를 받으라는 말이다. 성령이 인도한다. 인내 그 자체가 의미가 있지는 않다. 말씀의 인내는 성령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말씀을 붙잡고 있으면 성령이 오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완전한 능력이며, 성도들에게 큰 힘이 된다.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는 것과 세상의 종말은 맞물려 돌아가는 기아와 같다. 땅끝에 복음이 도착하면 세상은 끝이라고 예수는 잘라 말했다. 예수는 그 날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아니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도 했다. 주님의 사랑이다. 강추위와 빙점도 몇번 왔다가면 올 겨울은 가겠지만 빙점이 올때마다 영적빙점이라는 완전한 종말의 시간도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서는 안되겠다. 잠든 영혼을 주께서 항상 깨우시지는 않는다. 주께서도 피곤하실 때는 침묵하실 때가 있다. 이제는 스스로 깨어서 주님을 깨워야 할 것같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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