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는 천국이 너희들의 것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것이라는 기준을 제시해 주셨다. 지금 여기 있는 듣는 너희가 관심을 두어야 할 대상은 그들이라는 것이다. 주 예수의 구원의 의지다. 만인을 구원하는 모든 계획이 그들에게라는 그리고 그들의 것이라야 한다는 목표를 알게 해 주었다.
따라서 그들은 누군가? 그들은 너희들을 통해서 주 예수를 만나고 주 예수를 따르다가 성령의 말씀에 붙들리게 될 사람들을 지칭했다. 다시말하면 오늘날의 우리들이 그들이고 그들이 또 그들의 전도대상이었고 지명 대상이었다는 말이된다. 성경이 늘 그렇다. 현재 여기서 지금 읽는 사람을 대상으로 지금 듣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씀을 내 놓았다는 말이다. 듣는자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가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지켜 행하라고 했을때 그들을 향하여 가라는 의미였겠다. 천국을 듣는 이들은 그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교회의 중요한 의제다. 이 의제를 실천하게 하기 위해 주 예수의 가르침이 시작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우리도 그들로 시작해서 이제는 너희가 된 것이다.
그들 즉, 사람들이 천국의 사람이 되게 하는 일, 그 일이 말씀을 내는 목적이었음을 분명히 하시고 입을 여신 것이다.. 주 예수는 성령의 사람이었고 주 예수는 성령을 통해서 천국을 소유하고 계셨고 그 천국은 주 예수의 입에서 조건 없이 흘러나갔다. 주 예수의 말씀은 언제든지 성령의 말씀이었고, 흔히 성령과 말씀이 따로 이해되는 그런 이상한 나라를 전하지는 않으셨다.
성령은 성령대로 말씀은 말씀대로 떨어져서 오던 시대를, 말씀을 사람이 해석하던 그런 어두움의 시대를 끝내셨다. 주 예수가 흑암에 앉은 백성들에게 사망의 그늘에 앉은 백성들에게 큰 빛으로 오셨다는 말씀이 그 뜻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제자 마태는 이점을 매우 주목을 했다. 제자 마태는 성령의 말씀을 내놓으시는 주 예수를 증거했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마태가 제자가 될 하등의 이유가 없어 보인다. 말씀과 성령이 하나의 패키지로 움직이며 뻗어가는 나라를 3년반씩이나 경험하고 본 마태는 주 예수는 성령의 말씀을 내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렇게 천국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능력이 된다.
능력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땅에서 사람이 사모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 성령이 담긴 말씀을 사모하는 일이라야 하고 주 예수는 그 말씀을 말했을 뿐이었다. 이것이 천국의 핵심이고 천국이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에서 작동하느냐에 대한 원리였다. 주 예수는 그것을 말했을 뿐이다. 이것이 순수복음이고 순전한 말씀이다. 그저 입에서 말씀만 나오면 다 되어지는 나라가 천국이 진행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청중들은 그 말을 들으면 된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듣는 청중이 되라고 했다. 청중이 되는 것 또 하나의 열쇠다. 교회를 가는 이유는 천국의 청중이 되기 위해서다. 천국의 열쇠를 받으러 교회를 간다는 말이다. 천국을 침노하라는 말의 진의가 주 예수의 청중이 되라는 말이다. 너무나도 정확한 것은 청중은 들은 말씀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이다.
청중의 하는 일은 듣고 그들에게 가서 전하는 일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한다. 언제 어느 때 성령이 말씀에 역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혜는 그래서 전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에 있다. 순종은 들은 것을 말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상황은 언제나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말씀은 그 유혹이 어떠하든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다. 성령의 말씀이 나갈때 마다 천사가 일을 한다. 천사의 존재란 말씀을 수종 든다고 했기 때문이다. 천국이 왔다고 했을 때 예수의 생각은 그것이었을 것 같다. 과연 다른 천국이 있었을까? 다른 천국은 세상천국이 있다.
청중들은 기름부음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은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들에게 부어 졌었다. 주 예수의 기름부음은 제자들에게 부어졌다. 제자들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청중이었다. 이로써 주 예수를 아들이라고 불렀고 제자들을 아들들이라고 부르게 된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경청하는 일 그 일이 기름부음을 받는 일로 받아들였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처음부터 번역에 오류가 있었다. 원문하고 너무 거리가 멀다. 그리고 그 번역을 손을 대기도 쉽지 않다.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읽으면 이것은 예수가 전한 말을 사람의 말로 바꾼 것이다. 심령은 영어로 Heart에 가깝다.
이렇게 되면 예수의 청중을 사람의 청중으로 바꾼것이나 다름이없다. 심령이 가난한 것은 마음을 비우라는 말인데 마음에 초점을 두고 가는 나라가 천국은 아닐뿐더러 천국은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는 나라도 아니다. 심령과 성령의 비교는 처음부터 틀렸었다.
그래서 심령이라고 읽으면서 이게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자신의 마음을 신뢰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없다. 그래서 주 예수의 사람들은 말씀의 뿌리를 찾아 성경을 뒤지기 시작한다. 구약성경은 그래서 주 예수의 말씀을 증거하는 그림자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가 산상설교를 말씀하실 때는 모세냐 예수냐를 선택하라는 의미가 항상 내포 되어 있었다. 모세는 법이고 예수는 성령의 말씀이었으니까 더욱 더 그렇다.
심령이 가난한자라는 그 말씀의 원뿌리는 예언자 에스겔의 말씀 속에 있었었다. 예수는 늘 이렇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살았다. 에스겔은 전하기를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내 율례를 지키게 할 것이라고 했다.(36:27) 성경의 주제가 등장한 것이다. 모든 예언자들의 핵심메시지는 내 영을 너희 속에 둔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그 영이 율법을 행하기 때문이다. 주 예수의 말씀의 특징은 언제나 짧은 한마디에 모든 성경을 압축해 버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을 사람들의 속에 두어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겠다는 예언이 모든 성경의 예언의 결론이었다. 에스겔이 말한 ‘내 영’은 누가 읽어도 하나님의 영이다. 주 예수가 ‘심령이 가난한자는’ 이라고 말했을때 그 심령은 사람의 마음을 말한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영을 말했었다. 그래서 천국은 심령에서 시작된 나라가 아니고 내 영에서 시작됨을 에스겔은 말했고 주 예수 역시도 그 영을 지시하고 있었고, 제자 마태도 그 말씀을 그런 의도를 가지고 기록을 했다. 그래야 청중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그런 감동 속에서 그 영을 받아서 그 말씀 즉 하나님의 성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에스겔과 예수와 나를 연결시키는 일이다. 이것이 주 예수의 해석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예수의 삶의 방식이 그것이었고 사람들도 그렇게 살면 그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진리가 자유케한다.
주 예수는 언제나 그러므로 완전한 아들의 삶을 산 것이고 모든 믿는 자들의 모범이 된다. 한걸음 더 가본다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이 나의 지식 속에 ‘성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로 수정되어 인식되기 시작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천국이 한걸음 더 가까이 온 것이다.
주 예수는 하나님께 집중했고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주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신 것이다. 이 경우를 이렇게 표현해보면 좋겠다. 심령이 성령으로 교체되고, 성령이를 성령에게로 읽어서, 가난한 자를 붙이면 주 예수의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이 상태가 가장 성령충만한 상태이다. 누군가에게 이끌리느냐는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주 예수는 하나님의 영에게 이끌린 성령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 예수께 이끌리면 천국의 시민이 된다.
이제 마태복음 5:3절을 이렇게 다시 읽는다. 성령에게 이끌린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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