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세계 사이에 끼어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두 세계를 이어 주는 다리였다.”
![[폴윤의 중년 산책] 두 개의 얼굴로 살아온 인생 1 PaulYoon Column 1](https://kjhou.com/wp-content/uploads/2026/07/PaulYoon-Column-1-1024x683.jpg)
사람의 인생은 참 이상하다.
살아갈 때는 하루하루가 길고 버겁기만 한데, 지나고 나면 마치 짧은 영화 한 편처럼 흘러간다.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 어린 시절 사진 앞에서 한참 멈춰 선다.
사진 속 아이는 웃고 있다.
검은 머리에 조금은 다른 얼굴. 한국 사람 같기도 하고, 미국 사람 같기도 한 아이.
그 아이는 알았을까.
훗날 평생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게 될 줄을.
나는 어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미국에 왔다.
한국인 어머니와 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늘 조금 달랐다. 한국에서는 외국 아이 같다는 말을 들었고, 미국에서는 아시아인으로 보였다.
어디를 가도 완전히 그곳 사람은 아니었다.
공항 문을 나서던 날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님 손의 온기는 기억한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계셨고, 아버지는 낯선 나라에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고 계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 두 사람이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지.
미국에서의 어린 시절은 조금 특별했고, 조금 외로웠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물었다.
“너는 어디 사람이야?”
그 질문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왜 영어를 잘하냐고 물었고, 미국 사람이라고 하면 왜 얼굴이 다르냐고 했다.
어릴 때의 나는 늘 답을 찾으려 했다.
나는 누구지?
어디에 속한 사람이지?
거울을 보면 두 사람이 보였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얼굴, 아버지에게서 받은 눈빛.
두 문화와 두 언어, 두 개의 세계가 내 안에 함께 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한국 음식을 만들었다.
된장찌개 냄새가 집 안에 퍼졌고, 명절이면 한국 이야기를 해 주셨다. 한국의 골목길, 어린 시절, 가족 이야기들.
아버지는 영어로 농담을 했고, 미국식 삶을 가르쳐 주셨다.
우리 집 식탁에는 두 나라가 함께 앉아 있었다.
그때는 평범한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축복이었다.
소년이 된 나는 조금씩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한쪽만 선택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반은 한국인이고 반은 백인이 아니라,
두 문화를 모두 가진 사람이었다.
청춘이 왔고, 사랑도 찾아왔다.
누군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일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사회에 나갔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어디에 가도 나는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름을 이야기하면 출신을 물었고, 얼굴을 보면 배경을 궁금해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설명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나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작은 아이를 안아 들던 날 문득 울컥했다.
내 안에서 시작된 두 개의 뿌리가 이제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에게 한국말을 가르쳤고, 어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을 만들려 애썼다.
아버지에게 배운 방식으로 아이와 놀아 주었고, 어머니에게 배운 방식으로 마음을 안아 주려 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는 두 세계 사이에 끼어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두 세계를 이어 주는 다리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아이들은 자랐고 부모님도 늙어 가셨다.
어머니 머리엔 흰머리가 늘었고, 아버지 걸음은 느려졌다.
예전엔 그렇게 커 보이던 두 사람이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저려 왔다.
그제야 알았다.
부모란 자기 인생 일부를 자식에게 나누어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밤이 깊어지면 가끔 생각한다.
나는 어디 사람일까?
그러면 마음속에서 조용히 대답이 들린다.
나는 한 나라의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어진 두 나라의 사람이라고.
꽃처럼 피어나
두 개의 뿌리로 자라고
두 개의 하늘 아래 살아가며
때로는 흔들리고 외로웠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는 둘 중 하나가 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둘 모두를 품고 살아온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
![[폴윤의 중년 산책] 두 개의 얼굴로 살아온 인생 2 PaulYoon Column 2](https://kjhou.com/wp-content/uploads/2026/07/PaulYoon-Column-2-1024x888.jpg)
폴윤(Paul Yoon Kirkley)
CEO, Broker, Houskor Realty and Management
28 대 휴스턴 한인회장 역임
2008년 한국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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