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다. 의로 배부르게 살라는 말이다. 의는 성령의 말씀이다. 그것을 쉐마-레마라고 한다. 다른 것으로 배부르면 배부른 만큼 힘들어 지는 세상이다. 성경은 영적인 것을 말하는 생명의 떡을 다루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떡이 세상을 다시 창조한다. 영혼을 완전히 새롭게 한다. 이 떡 말고는 다른 떡이 세상에 공급되면서 인류의 비극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얼마남지 않았다. 생명의 떡이 없이는 세상도 인생도 지구도 양식이 없어 굶주림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생명의 떡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떡이고 주 예수의 말씀의 떡이며 동시에 주 예수 자신이 생명의 떡이기도 하다. 오직 예수만 있다. 이 예수를 한번 만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음이 고통스러운 시대가 된 것이다. 세상은 반복되나 디테일에서 세상을 혼돈으로 끌고 들어가는 원수들의 세계를 본다. 아프다. 그러므로 인생은 생명의 떡으로 배부르게 살라고 한 것이다. 사람들이 정작 찾는 것은 결국 생명의 떡이 될 것임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는 모세나 사무엘처럼 쉐마 들어라! 라고 말하는 대신에 레마를 듣고 살라는 것이다. 그 레마는 사람의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있다. 주 예수가 나의 말을 받아 먹어라! 라고 했을 때 그 말은 레마를 받아먹어라 라고 한 것이다. 레마는 성령의 말씀이다. 이것이 주 예수의 메시지의 전부인 것 같다. 그러면 내가 너희 안에 너희는 내 안에 있게 됨으로 내가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룬다는 말이다. 이것이 개인 천국의 시작이다. 시작이니 이제 출발했으니 경건과 경외를 택하며 살아가면 된다.
예수가 입을 열거나 기적을 일으키시거나 죽었다 살아나셨거나 이 모든 예수의 일들은 결국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직접 되고 너희는 나의 자녀가 되게 하는 데 있었다. 주 예수의 자신감을 보라. 너희 배고픈 자들아 기뻐하라! 내가 빵이다. 나를 먹어라. 나는 생명의 빵이다. 그것이 영생이다.
나의 말을 먹으면 생명을 먹는 것과 같다. 무슨 뜻인가. 이것을 먹기 전에는 생명이 없었고 죽은 나무와 같았으며 자기 의로 살았고 종교적 행위로 가장된 인생들이었으며 그리고 지옥에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없는 처지에 갇혀있었다는 말의 의미였다. 주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의 믿음을 가진 것이 더 중요하다. 그 믿음을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쉐마가 아니라 그의 레마다.
사람들은 수탈과 과세와 고역으로 인하여 삶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빵이 세상의 주인이 된것이고 지금도 그렇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구호가 아니다. 신앙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믿음을 갖고 사느냐에 달렸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학교에 가고 집에 오고 이런 반복된 일상들 속에서는 인생이 인생일 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생이 뭐길래 문화도 교육도 여행도 물질도 자식도 경제도 정치도 그 어떤 것도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듯 가장한다. 이런 세상은 처음부터 희망이 없었고 단지 쇼였다. 무엇이 믿음인가? 답은 하나다. 레마를 들음이 믿음이 믿음되게 한다.
믿음이 어떻게 되었나? 믿음은 우리를 한번도 떠난적이 없다. 애굽에서 노예살이 400년은 이스라엘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았고 절망이었다. 그 노예들도 갇힌 섬에 살 듯이 출근하고 일하고 매일 똑같은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살아있는 믿음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었고 결국 모세를 만나게 되었다. 그와 같이 예수 시대의 믿음의 사람들도 결국 예수를 만났다. 지금은 레마를 듣는 것이 주 예수를 만난 것과 같은 말이다. 성도는 그 믿음을 지켜야 산다. 의인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그 말이다. 노아는 믿음을 지켰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옮겨졌다. 노아의 믿음의 기준은 조상 에녹이었다. 모두가 세상의 멸망을 예상도 못하고 있었을 때 노아는 배를 만든다. 그리고 세상이 물에 잠길 때 노아와 가족들은 일 년이 넘도록 둥둥 떠다니면서 땅에서 들림 받음을 경험했다. 에녹에 대한 노아의 믿음이 그렇게 응답이 된 것이다. 노아 600년의 믿음의 결실이다.
성경책도 없었던 시대였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노아는 에녹의 이야기를 믿었을 뿐이다. 노아는 죽음을 넘어섰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무지개 언약을 받으며 다시 시작된 믿음의 나라를 아브라함에게 이어주는 믿음의 다리가 된다. 노아만 의인이었고 완전한 자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놀라운 이야기다.
인생은 믿음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원수가 이 불을 끄려 한다. 우리 속에 살아있는 믿음은 언제든지 환경이나 사정 때문에 소멸 되지 않고 믿는 자들의 믿음이 된다. 인생은 그 일에 반응하는 일이다. 그런 믿음이 궁극에 가서는 주 예수와 함께 휴거에 참여하게 된다.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사람들이 에녹과 노아였다.
예수는 입을 열어 천국을 말했다. 천국을 말하고 듣는 사람들을 변화시켜 천국으로 데려가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공식이 아닌가. 천국을 원하면 성령을 받으라고 했다. 그리고 성령을 원하면 애통하며 구하라고 했다. 그리고 애통은 반드시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그 위로가 성령이다.
성령을 받으면 사람들은 주의 일처럼 내 일을 하게 되고 또한 주의 일에 가담하게 된다. 성령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일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가 되고 성령의 의라고 부르고 예수의 그 의로 보아도 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고 했다. 배불러야 일할 맛도 나는 법이다.
배부르게 살면 좋다. 여유도 좀 생긴다. 그 배부름으로 반드시 이웃을 도와야 함께 산다. 의를 이루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고, 의는 옳은 행실을 말하는 것이지 의가 말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말 한마디가 레마의 말씀이면 그걸로 다 된 것이다. 더 이상 인생에는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예수만 있다. 나의 행함이 주제가 아니다. 나의 행함은 나의 의가 될 뿐이다. 레마는 일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다. 주예수의 가르침이다. 이것이 천국과 지옥을 나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후회가 없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다. 이들은 레마의 말씀을 소망하는 자들이다.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레마다. 그러니 듣지만 말고 레마를 먹고 마시라고 했다. 그의 말씀들은 성령이기 때문이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다. 하박국의 말이다. 의인 하박국은 자신으로 살지 않는 것을 배웠다. 사람의 의는 모두가 똑같다. 의인은 하나님의 의로 산다. 하박국에게 믿음을 빼놓으면 아담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오래 장수하다가 흙으로 가는 것 그뿐이라는 말이다. 백세시대가 대수가 아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라고 정의했다. 물이 없어 갈 함이 아니고 양식이 없어서 기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다. 기근을 보냈다. 갈멜산 꼭대기가 말랐다. 물이 없어졌다. 그리고 비가 내리지 않았다. 선지자가 그때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기근은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어서 세상의 기근과 종류가 다른 기근임을 말했다.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었던 시대를 누가 알았었을까? 이제는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쉐마가 레마로 가고 레마가 의인의 삶을 살게 한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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