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절 유월절 맥추절을 지키라.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무교절은 출애굽 당시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지켜졌습니다. 이 절기는 유월절로부터 일주일간에 걸쳐 지키는 절기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낸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무교절은 유월절부터 시작해서 일주일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인 무교병을 먹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430년 동안 종살이에서 해방을 받은 날입니다. 애굽은 잔인한 땅이었습니다.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땅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나일 강에 던져야 하는 비극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때에 모세를 세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심으로 애굽으로 하여금 두 손 들게 하시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은 모든 장자들과 짐승의 첫 새끼가 죽이는 대 재앙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재앙의 날 밤에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양 인방에 바르므로 장자들이 구원을 받았지만 애굽 전역의 모든 장자들과 짐승의 첫 새끼들은 그날 밤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날이 유월절입니다. 이 밤에 애굽을 급히 떠나면서 무교병을 준비해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맥추절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날입니다.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 열매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보리, 밀, 포도. 무화과, 올리브도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초막절. 수장절,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40년 광야생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초막을 짓고 야외에서 한주간을 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초막절 장막절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추수가 끝난 때에 추수한 곡식을 저장한다고 해서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지금의 추수감사절입니다. 맥추절처럼 일용할 양식을 수확에 대한 감사절기입니다. 이 세 절기들을 통해 이스라엘은 애굽의 압제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앞으로 지켜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3가지 절기는 그들을 구원해 주신 은혜와 살아갈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하심의 두 가지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감사가 우리의 삶에 가져오는 유익이 무엇인지 몇 가지 삶의 원리와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자. “이같이 행하여 너의 평생에 네가 애굽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되였던 너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였나 니” “너는 애굽에서 종되였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 찌니라” (신 16:3. 15:15. 16:12)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감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믿음입니다. ‘감사’라는 것은 감사하는 사람의 삶에 역동적인(dynamic)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에디슨은 청각 장애자였습니다. 에디슨은 신문을 팔며 기차의 한 구석에서 실험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기차의 진동으로 실험약품이 떨어져 불이 났고 이에 격분한 차장이 에디슨을 떠밀어서 청각 장애가 생겼습니다. 후에 에디슨은 질문을 받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연구에 힘들지 않았습니까?”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귀머거리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딴 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으니까요” 자세히 보면 그 상황이 에디슨을 에디슨 되게 했던 중요한 도움이었다는 것입니다. 귀머거리됨에 감사하였기에 그의 연구는 더 역동적인 발명이 된 것입니다. 지금 현재를 묵상하면서 그리고 지난날을 뒤 돌아 보면서 뿐 만 아니라 앞날을 기대하면서 감사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난날을 원망하면서 살면 힘들고 아프기만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면서 살면 힘이 생겨납니다. 지난날을 긍정적으로 생산적으로 생각하면서 감사하면 삶의 에너지가 계속적으로 공급됩니다. 원망이나 불평 대신 감사하면 힘이 생겨납니다. 감사수치가 하나님과의 관계수치를 결정짓습니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만들어 내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많이 소유하지 못해도 감사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많이 있어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소유했다고 해서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만큼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감사가 없다면 우리는 연명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오래 산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역동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를 넘치도록 하라고 권면합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엡 5:4) 성도의 특징은 감사하는 말에 나타납니다.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은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어떤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형편과 처지이든지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나쁜 일을 만나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주권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면서 주님을 신뢰함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7) 골로새서는 사도바울이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입니다. 사도바울이 ‘감사’라는 명사와 동사를 46번이나 썼는데 그 대부분이 옥중서신에서 사용했습니다. 그의 처지는 감옥 안에 있었지만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에 대해서 마땅히 감사해야 된다고 역설합니다. 사도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묶여 있었지만 감사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감사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형편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조건적인 감사보다 현재 오늘 이 시간에 감사하는 자에게 주님은 더 귀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이끌어 주시고 채워주실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체질이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을 주어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삶의 증표가 되고 우리가 불평과 불만과 시험에 빠지는 것을 예방합니다. (골 3:15-17) 무교절, 유월절이 구원에 대한 감사라면 맥추절은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아 다시 한 번 우리의 지난 날들을 생각해 보면서 지금까지 일용할 양식 주심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식사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지구상에는 먹지 못해 굶어 죽는 형제자매들이 많은데 이렇게 또 일용할 양식 주심에 감사합니다. 이 음식 앞에 부끄럽지 않게 하옵소서” 하루에도 7000명에서 2100명이 굶어 죽어간다고 합니다. 일용할 양식 주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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