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온 이야기에 보면 어느 날 천사장들이 하늘에서 회의를 했다고 한다.
생명은 본래 하나님의 소유였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인간에게 주셨지만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그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의주제는 “이제 생명을 어디에다 숨길 것인가?”였다.
“인간은 워낙 탐욕스러워서 생명을 어떻게 할 지 모르니 인간이 모르게 숨겨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를 정했는데 만일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을 주어 축복하기로 결정을 했다.
왜냐하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근본적인 마음이 하나님의 측은지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오직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측은지심 때문이다.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비유를 기억하는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다가 여리고로 내려 가던 중에 강도를 만났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선택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곳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타락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타락한 곳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신앙생활이 잘 될 리가 없었다.
강도를 만났다.
불신앙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문제이다.
강도를 만나 거반 죽에 된 사람이 여리고의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 사람의 형편을 보고도 외면하고, 레위사람도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부정 탄다고 지나가고,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거반 죽어가는 사람을 측은하게 여겨 자신이 타고 가던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 주고 그 생명을 살렸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높은 신분의 사람이다.
사마리아인은 소외되고 이름없는 계층의 사람이다.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른 점이 무엇인가?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는 긍휼이 없었다.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 불이익을 받을까 봐 그냥 지나갔다.
자기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록 소외 계층의 사람이었지만 사마리아인에게는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누구의 마음인가?
신학교 다닐 때 읽었던 윌리엄 바클리(William Barclay)라는 유명한 신학자의 “The mind of Jesus”라는 책에서 “예수님이 죄인에 대한 생각은 오직 하나! 긍휼뿐이다.” 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이 있느냐 없느냐 우리에게 이것 하나를 묻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마5:7)고 하신다.
오직 긍휼,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것은 수직적인 마음이요 위에서 내려오는 마음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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