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함께 길을 가다가 나면서 소경된 사람을 만난다.
그는 불행을 달고 태어났다.
사람의 몸이 열이라면 눈이 일곱이라고 한다.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나이 40이 넘었지만 여전히 남의 신세를 지고 살아야 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매우 궁금해졌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어본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9:2)
예수님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대답하신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3)
우리는 이 질문과 대답 속에서 세 가지 진리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하는 질문은 불교적 관점이다.
이 사람이 지은 죄가 많아서, 혹은 부모의 죄가 많아서,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 인과응보적 업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함이다.”
두번째는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라는 말은 원인을 과거에 두고 하는 말이다.
과거에 자신이 지은 죄, 과거에 부모가 죄 때문에 오늘의 불행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불교의 윤회적 관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미래에 관점을 두셨다.
과거가 원인이 아니고 원인이 미래에 있다는 말이다.
“이 사람을 통해서 현재의 문제는 미래에 놀라운 큰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잠깐 눈이 어둡고 괴로운 시간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답이다.
우리는 모든 원인을 자꾸 과거로 돌리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미래를 보신다.
보다 높은 차원으로 미래가 원인이 되어서 오늘 현재가 있다는 것이다.
보다 더 높은 미래를 위해서 오늘의 현실이 있다는 말이다.
세번째는 불행이 죄 때문이라는 것은 인간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관점을 하나님께 두셨다.
태어나면서부터 보지 못한 불행을 안고 태어나서 40년간 불행하게 살아가지만, 그것은 오늘을 통해서 미래를 위함이다.
곧 오늘 이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유함을 받고 완전히 나음을 받아 예수를 구주로 믿고 미래의 하늘나라를 소유하게 하기 위함이다.
오늘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셨다.
만일 그가 소경이 아니었다면 눈을 뜨게 하는 하나님의 일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미래를 위한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보통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까? 라고 한탄한다.
“어떻게”는 이미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서 해결해 주셨다.
오늘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과 심판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 주셨으므로 이제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말이다.
살면서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닥쳤을 때 우리는 왜 이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무슨 일이 생기면 대개 우리는 과거만 들추고 있다.
그러나 과거는 이미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서 해결 받았음을 믿는다.
눈을 과거에 두지 말고 미래에 두어야 한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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