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렸다. 십자가 아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40일을 묵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로 빈 마음에 거룩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주 예수는 시공을 초월하고 무소 부재한 그리스도임이 입증된 것이다. 그것이 새 생명이다. 이 소망이 천국까지 간다.
그리고 부활은 모든 논쟁을 끝낸다. 너는 누구고,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종교가 뭐고, 비전이 뭐고 조상은 누구고, 그리고 가진 것이 얼마냐에 대한 것과 모든 전통들과 모든 판단들을 무색하게 했다. 전부를 뒤집은 것이다. 성탄절이 주 오신 일이라며 부활은 다시 태어남의 축제가 된다. 거듭남이다. 바로 이거다!
마음 한가운데 주 예수가 자리 잡고 들어와 주인이 되었다는 선포이다. 이 일을 믿는 것을 신앙이라고 한다. 부활은 우리 안으로 들어온 예수의 영이다. 이 영이 성경을 알게 하고 하나님나라의 모든 비밀과 성령의 하는 일을 통달하게 한다. 이를 두고 주 예수는 내가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람에게 예수 믿으라고 말한다는 것은 생명의 말씀을 듣는 것이 지상 최대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가난해 보아야 가난을 아는 것은 아니다. 부자가 되어 보아야 부자를 이해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가난은 부요를 좋아한다. 부자가 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인생의 주인이 돈일지라도 하나님을 보면 돈이 좀 우습게 보인다. 그리고 부자냐 가난하냐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영혼에 부활의 영이 함께 하고 있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도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의 근거가 없는데 어디서 부활을 말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경우가 더 쉽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종종 돈 많은 부자 되려고 예수를 믿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목적이 잘 안되면 시험에 들고 십계명을 버린다. 이유는 10계명이 사람의 욕망에 삼킨 바 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을 망치는 길이다. 부자이면서도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은 그만큼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도 다가 아니다. 성경은 영혼의 구원을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다. 부요와 가난이 영혼의 구원을 결정짓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인생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령 역시도 돈 주고 살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만나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의 말씀을 듣는 길이다. 다른 길은 사람의 감정과 인생의 현실 앞에서 오락가락 변한다. 성령의 말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그것이 주 예수 부활의 목적이다.
그래도 가난이 좋았던 것은 하나님을 만나야겠다는 열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가난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세상에서 부와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가난이 부요로 바뀌면 태도가 바뀐다. 하나님과 점점 멀어진다.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던 것이 아니고 자기 목적을 위해 산 것 밖에는 안된다.
하나님을 믿는 일이 쉽지가 않다. 하나님과 함께 계속 가기가 쉽지 않다. 달려갈 길을 끝까지 가야 한다. 세상의 염려와 돈과 명예의 유혹에 쉽게 넘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 돌아오는 것이 좋다. 그것이 부활의 아침이다. 세상의 출세와 성공이 성경과 기도와 교회를 망쳐놓는 경우가 허다했다.
예수는 처음부터 모든 부요를 내려놓았다. 그것이 성경대로 사는 방식이었다. 욥은 모든 부를 빼앗겼었다. 성경대로 살지 않았고 자기의 생각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욥이 그 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참 억울했을 것 같다. 부도 가난도 은혜로 알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를 주로 삼고 기도하고 성경 읽으면서 사는 것이다.
기도하면 뭐가 좋으냐 하겠지만 기도하다 보면 잘못한 일들이 많이 생각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잘 알게 된다. 읽어야 면장을 한다. 독서는 읽음과 깨달음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늘의 뇌로 바뀌어 간다. 건강해진다. 마음의 평화도 얻는다. 어떻게 누구와 읽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
말씀 읽으면 뭐가 좋으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요 명철임을 알게 된다.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능력이다. 명철은 나도 소중하고 상대방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다. 결국 지혜와 명철은 서로 사는 길을 택하는 일이 된다. 이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성령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우신다. 그 세상사는 방식에 대해서 바울의 통찰을 빌려온다.
바울은 로마 신자들에게 편지했다. 한몸에 많은 지체가 있다. 그러나 각각이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모두가 역할이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성령은 원팀을 만든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고 말한다. 한 대의 자동차가 여러 부속품으로 되어있기에 자동차가 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연결이다.
부활의 아침이 그냥 오지 않았음을 안다. 성경의 모든 것의 결론이 부활을 겨냥했었다. 부활은 이 땅에서의 삶의 시작이고 부활은 결국 둘째 사망을 이기게 하는 힘이라고 했다. 부활의 아침이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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