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나를 대신 해서 나를 위해 나 때문에 죽어 줄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오랜 계획 속에서 – 물론 우리 인생은 다 알 수 없다. 아니 전혀 모른다.- 나를 위해 대신 희생해 줄 사람을 보냈다. 그 이름은 어린양 예수다. 평생에 부를 이름이다. 영원히 찬송할 이름이다. 이 이름만 부르다가 인생을 마쳐도 결코 손해나지 않는다.
인생의 사는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떨까? 영혼은 빛나도록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그 영혼과 인생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인생의 부귀영화가 영혼을 못 살게 구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말씀을 생각해야 한다. 율법과 주의 말씀이 나오는 곳에 귀를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리고 인생을 의지해서는 안된다.
예수의 죽음은 갑자기 죽은 죽음이 아니다. 그는 산채로 죽었다. 처음있는 일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죽이실 리가 없다. 산 채로 죽은 경우는 죽음 가운데에서도 최악의 죽음이다. 그 죽음이 있었다. 죄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산 채로 죽었다. 어떤 형태로 죽었든지 간에 모든 죽음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죽음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과 그 계획을 알고 순종함을 통해서 죽음을 거절하는 인생 본연의 생존능력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죽음은 가장 복된 죽음이다. 의인들의 죽음은 복되다고 했다.
생각한다. 그런 죽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렇게 값지게 죽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주 예수의 말씀을 지키다가 받는 박해와 핍박과 거짓들에 의해서 욕먹고 고난당하는 죽음은 하나님의 완전한 죽음의 시나리오에 들어있는 죽음으로 이해하면 된다.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예수의 첫 말씀은 단연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천국이 천국에서 와서 천국을 말한다. 그 천국은 말한 대로 살았다. 그것은 완전한 순종이었다.
예수를 믿었다. 구원을 받았다. 여기서 천국을 애통하며 구해야 하는데, 성령이 없으면 천국을 구하는 기도가 처음부터 차단된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 곧 성령에게 갈급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이며 이 일이 계속해서 천국을 소유해 갈 수 있는 길이 된다는 확신이 든다.
예수의 십자가는 그러므로 홀로 결정해서 지고 간 십자가가 아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이사야 선지자의 권세 있는 예언에 의존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한번 일어날 일이었고 하나님이 직접 지휘하고 통제하는 제사가 되었었다. 하나님이 친히 드리시는 하늘의 제사가 십자가의 어린양 예수의 희생제사 였으니 그것은 가장 완벽했다.
이 제사로 모든 절기와 제사와 예물이 끝났다. 모든 것을 가지고도 구원을 얻는 데 실패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예수로 하늘 제사를 끝내시고 완전히 다른 시대를 열었다. 이것은 노아의 홍수와도 다르고 바벨탑 이후와도 다르고 포로에서 돌아온 것과도 다르다.
이것은 하늘의 제사를 통해서 일어난 유일한 영 단번 희생 제사다. 예수는 피를 흘렸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전쟁이 사람을 죽인다. 도둑이 사람들을 죽인다고 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다 라고 했다.
이사야는 예언하기 시작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예수는 순한 양이었다. 예수는 가느다란 갈대와 같았다. 예수의 외모는 볼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메이샤인 것을 알아볼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마음 속에서 말이 나온다. 천국을 계속 말했다. 사람들은 산상설교라고 말했다. Beatitudes라고 불렀다.
그는 무시를 당하고 그는 거절을 당하고 그는 고통을 당하고 오늘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그가 홀로 당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를 천하게 평가했다. 그를 바보라고 하고 나가라고 했다. 그가 나무 십자가에 매달릴 때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고통은 모두 우리의 고통을 대신해서 짊어진 것이며 나처럼 이렇게 살아가라고 말한 것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그러려니 말거니 하면서 그 길을 계속 가라고 한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우리의 죄 때문에 그의 몸은 부서졌고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그를 모른 체하며 모두 양 같아서 우리의 길을 가면서도 어디로 가는지조차 몰랐다.
오히려 예수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이 되게 했다. 그러나 그는 고통 중에도 입을 열지 아니했다. 죄와 싸우는 중이고 사람들의 잘못을 대신 지고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는 세상에게 당하여 산산조각이 나서 버려질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그 말씀이 예수에게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주 예수는 십자가로 우리들을 다시 낳았기 때문에 성령으로 기르려 한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십자가로 나를 나으셨고 성령으로 기르시는 것이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신다고 했다. 성령은 어머니와 같다.
십자가로 나를 낳으셨다는 말은 또한 나를 거듭나게 했다는 말씀이다. 거듭남은 십자가로 된 것이다. 주 예수의 피가 거듭나게 하는 능력이다. 우리 모두는 예수가 좋아서 물로 세례를 받았고 십자가의 은혜로 거듭난 성령의 사람들이다. 성령의 사람들은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나의 피흘림은 결국 구원의 완성이 된다.
그리고 십자가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끝냈다. 그래서 십자가는 세상과 나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지라는 예수의 말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적이 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망하지도 넘어지지도 않는 것은 주 예수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겨쌈을 당해 보고 알았던 일이다.
고난은 나에게 생명은 너에게 이것이 전도자가 견지해야 할 태도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고난을 나에게 채운다는 의미이다. 그런즉, 먼저 의에 배부르고 목마름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것이 없이는 나의 고난은 고난으로 끝난다. 아무 상급이 없다는 말이다.
주 예수의 언어를 보면, 나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 복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의 상급이 크다고 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세상의 메뚜기 같은 사람들을 품고 기도하는 일임을 늘 간직하면 좋겠다. 영광은 쉽지 않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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