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는 할례일 뿐이다. 그러나 할례 위에 축복을 포개면 할례가 기적으로 바뀐다. 그 기적을 만드는 일은 언약의 말씀에 달려있다. 이것이 할례의 포인트다. 약속의 할례가 하나님의 할례다. 아프리카나 중동 일대에 사는 부족들에게도 할례는 일반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할례는 난지 8일째 되는 남자 아이의 포피를 잘라내는 일이다.
할례가 기적이 되기도 하고 할례가 짐이 되기도 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할례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기회가 된다.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하나님은 할례를 명령했다. 그것은 약속이 붙어있는 할례였다. 이스마엘의 할례는 그저 할례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할례는 약속을 믿고 이삭을 받는 할례였다. 이것이 믿음의 할례이다.
다윗은 사자와 곰의 입에서 빼앗긴 양을 꺼내온 사람이다. 이것이 할례의 행동이다. 모세가 율법을 도입했다면 다윗은 율법을 행했다. 그러는 중에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이 따랐지만 그것이 그 율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믿음의 할례다.
다윗은 할례없는 자들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저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모욕에 물멧돌을 들고 서서 말한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 믿음의 할례는 무할례 골리앗을 식은 죽 먹듯이 해치운다. 곰처럼 쓰러진 거인의 목을 칼로 베어냈다. 이 또한 믿음의 할례다. 태어날 때부터 할례를 받았던 군사들은 40일동안 골리앗 앞에서 무기력했었다.
이런 흐름은 성경의 중심을 관통하면서 주 예수의 십자가로 가게 한다. 언약은 언약으로 연결되고, 약속은 약속으로 연결되고,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들로 이어진다. 이 흐름은 계속되고 결국 주 예수와 연결된다.
십보라는 할례의 여왕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갑자기 죽이려 했다. 이유를 몰랐다. 아내 십보라가 돌칼을 집어 들고 아들의 포피를 베어 모세의 발아래 던지면서 당신은 나의 피남편 이라고 말했다. 모세는 십보라의 촉 때문에 이유를 모르고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다. 할례 때문이었다. 어미가 아들에게 한 최초의 할례이기도 했다. 이 일 후에 모세는 애굽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것이 모세가 40년동안 이스라엘을 짊어지게 한 힘의 원동력이었다.
바울은 할례는 마음의 가죽을 찢는 일이라고 했다. 고통이 따른다. 피를 흘린다. 피흘림이 없이는 언약은 없다. 그러므로 할례는 십자가의 피의 할례를 예고 했다. 십자가의 피 할례는 온몸의 피흘림 이었다. 그 피로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덮었다, 이것을 믿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할례의 둥근 모양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을 상징한다. 이날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다. 할례는 안식일에도 행해야 하고 일년 중 어느 때라도 아무 제약을 받지 않고 시행되는 유일한 규례다. 영원한 언약의 예언이다. 제사장은 피 한방을 뚝 떨어뜨리면서 입을 연다. 축복을 선언한다. 여호와가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고 이 아이를 영원히 지키시기를 기도한다.
이 축복의 선언이 축복의 통로다. 어미는 그때부터 말씀을 받기 시작한다. 말씀을 받지 못하면 아이를 기를 수가 없다. 말씀이 아이를 기르는 교과서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모계중심의 사회가 되었을 것 같다. 얼마나 간절하게 말씀을 사모하는지 모른다. 어미와 아이의 운명이 걸린 일이었기 때문이다.
할례받은 아이를 안은 어미의 얼굴이 빛난다. 그 얼굴은 말씀의 광채에 의해 반사된 얼굴이다. 광채나는 어미의 그 얼굴은 늘 아이에게 향해있다. 어미는 아이가 잠들면 아이의 눈을 보면서 받은 축복의 말씀을 반복해서 여러 번 읽어준다. 눈을 보고 읽어주라고 했다. 예수는 눈이 성하면 온몸이 성하다고 말했다.
눈을 통해 말씀이 들어간다. 눈은 영혼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했다. 이것이 아이를 축복의 자녀로 키우는 방법이다. 아이의 운명은 여기서 모두 결정된다. 어미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아이를 지키는 축복의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빛과 사랑 속에서 어미는 아이와 말씀에 묶여서 12세까지 한몸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13세에 인생의 두 번째 통과의례인 성년식을 행한다. 이렇게 에덴의 실패를 극복해 가는 율법중의 하나가 할례였다.
믿음은 할례보다 먼저 있었다. 마리아는 주 예수의 태어남에 대해서 천사로부터 들은 모든 말씀을 마음에 새겼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 말씀이 주 예수의 오심이 되었다. 마리아처럼 리브가에게도 태중에 약속의 말씀이 있었다. 할례를 행하기도 전이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요나가 니느웨 성읍 12만명을 살릴 때도 요나는 그들에게 할례를 요구한 적이 없다. 할례는 아무런 구원의 조건이 못 된다.
구원은 예수뿐이다. 예수가 유일한 것처럼 구원도 유일하다. 그래서 할례는 주 예수의 옷을 입을 때 의미가 있다. 할례 그 자체는 육신의 자랑거리다. 종교적 기득권이다. 할례가 없으면 구원이 없다는 교리를 정교하게 만들어 퍼뜨린다. 그러다가 결국 할례는 할례의 저주로 끝났다. 할례는 있어도 없어도 된다. 예수는 없으면 안된다. 오직 예수다!
할례든 무할례든 주 예수의 피흘림이 없으면 가짜다. 주 예수는 구원의 피를 쏟았다.. 주 예수의 피가 없으면 할례도 홍해의 갈라짐도, 가나안땅의 정복도 그리고 그 모든 기적과 표적들도 모두 저주로 뒤집힌다.
오직 예수로 다시 시작되는 할례만 인정된다. 이것은 믿음이다. 주 예수 때문에 모든 성경은 믿음으로 읽어야 한다. 믿음의 눈으로 읽지 않으면 모든 성경은 읽어지지가 않는다. 오직 예수의 피가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었다.
이방인에게도 열렸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때를 만난다. 기름이 부어지고 믿음으로 할례의 언약을 받는다. 이것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조건이다. 할례는 날카로움과 영원함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어떤 좌우에 날 선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했다. 성령이 직접 할례를 행하는 장면이 히브리서에 나온다. 이 예리함은 사람의 혼과 영과 골수와 심령을 찔러 쪼갠다고 했다. 하나님의 수술대 위에 스스로 올라가는 사람은 복이 있다. 성령의 할례는 차별이 없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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