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이 많은 세상이면 좋겠지만 타락은 사람의 긍휼을 모두 빼앗아갔다. 그래서 세상에는 세상의 긍휼은 있어도 하나님의 긍휼은 없다. 문자 그대로 긍휼없는 세상인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이 나의 긍휼이 되는 것이 구원이고 믿음이다. 그러므로 제목이 긍휼과 긍휼이다. 긍휼과 긍휼이 만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성경의 주된 흐름이기도 하다.
앞에 긍휼은 하늘의 긍휼이고 뒤에 긍휼은 하늘의 긍휼을 입은 사람들의 긍휼이다.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사람들은 반드시 하늘의 긍휼을 먼저 입을 필요가 있다. 다른 류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은 결코 후회가 따른다. 그것은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긍휼이요, 인생에서 찾을 수 있는 만들어지고 자연스러운 감동이고 긍휼일 수는 있다. 이것을 하늘의 긍휼이라고 오해하면 매우 곤란하다. 긍휼은 애통하며 구하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일종의 위로와 은혜다.
긍휼은 하나님의 구원의 열심과 인내, 그리고 불쌍히 여기심 정도로 해석이 된다. 인생은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을 때 긍휼을 입게 된다. 그리이스어로는 파토스요, 히브리어로는 헤세드다. 주 예수는 이것을 아가페라고 말했다. 아가페는 나를 주고 너를 살리는 사랑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고 했다. 앞에 긍휼이 뒤에 긍휼로 가는 길이 성경이 가는 길이다. 이 길이 은혜의 길이고 사랑의 길이고 동시에 긍휼이 오는 길이다. 성령이 하는 일은 이것이다.
긍휼과 긍휼이 한짝을 이룰때 그것을 완성이라고 한다. 긍휼과 긍휼을 붙여서 읽기만 해도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도 간절히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지 모른다. 그것이 긍휼의 씨앗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들은 작든 크든 상관없이 긍휼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연민, 하나님의 안타까움. 그리고 하나님의 열심 & 열정은 주 예수에게 모두 빚을 졌다. 하나님의 긍휼이 사람의 긍휼이 되는 데는 십자가의 피흘리심의 은혜를 통해서만 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찬송가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긍휼의 통로를 찾으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긍휼을 알게 되었을까? 하나님의 긍휼이 백성들에게 쉽게 스며들수 없었다. 아무리 하나님이 한없는 자비와 사랑을 이스라엘에게 베풀었어도 그때 뿐이었다. 죄가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긍휼이 백성들의 긍휼이 되지 않으면 그 긍휼은 실패한 긍휼이다. 긍휼은 천국열쇠와 같아서 숨겨진 열쇠를 그 누구도 찾을 수가 없었다. 주 예수는 그 천국 열쇠를 제자 베드로에게 준 적이 있었다. 사람이 하늘의 긍휼을 찾으면 찾아 질 줄 알았다. 그러나 긍휼은 은혜처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주 예수는 긍휼을 원하면 성령을 우선 애통하며 구하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긍휼이 백성들에게 전달이 안되었을 때의 그 상황은 끊어진 다리와 같았을 것 같다. 그것은 불쌍하고 슬픈 긍휼이다. 무의미하다. 여기서 종교와 교회가 나뉜다. 이단과 정통이 나뉘는 지점이기도 하다. 예수가 없는데 하나님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긍휼없이 지낸것 과 같았다. 이것은 너무 슬픈 이야기 였다. 구약의 이야기다.
그러나 주 예수가 이 막힌 벽을 완벽하고 확실히 허물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아들 예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가장 좋은 길이 된다. 아멘
하나님의 긍휼을 보라.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말한 아브라함의 허물을 하나님은 묻지 않으시고 오히려 복을 주셨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가로채 달아났어도 하나님은 야곱에게서 이스라엘이 나오게 했다. 모세는 살인죄가 있고 십계명을 깨뜨린 분노가 있었어도 모세를 민족 해방의 지도자로 쓰셨다. 다윗은 왕이 해서는 안될 짓을 범했어도 하나님이 세 번씩이나 기름을 부어서 다윗을 통일 왕국의 지도자로 세워 주셨다. 하나님은 긍휼에서 긍휼로 문제를 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인생을 보지 않고 하나님은 그 약속만을 지키는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그의 약속을 아들 예수에게 다 연결 시켜 놓았다.
하나님은 이미 자신을 말했었다. 나는 인자와 자비와 은혜와 진리가 풍족하고 노하기를 더디 하는 하나님이라고 모세에게 말한 적이있다. 소위 이것이 하나님의 다섯가지 성품이다. 이런 넘쳐나는 긍휼의 하나님을 경험한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의 성품이 그의 말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 중에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는 말에 서 주춤했다. 하나님은 오직 긍휼이시고 사랑이어야만 하는데 하나님이 가진 분노로 무서운 하나님, 심판의 불로 임하시는 하나님, 시내산의 두려워 떨게 만드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두려워 했다.
하나님은 인자와 자비와 은혜와 진리와 그리고 분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분노 중에 지나가는 인생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분노가 있어도 화를 낼 수 없다. 하나님이라도 주 예수의 날까지 인내해야 하는 자신의 파토스가 있었다. 사랑에게는 분노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하나님의 화를 풀어야 한다. 아무도 하나님의 분노를 풀 수 없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하나님 자신의 분노를 풀도록 허락하신 적도 없다.
하나님의 분노가 풀려야 구원이 온다. 하나님의 심판을 유보한 인내,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다.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 예수의 긍휼을 만날때 까지 인내해야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400년을 인내한 이스라엘이 모세를 만났듯이. 주의 긍휼을 만나면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에 대한 대상에서 제외된다. 긍휼은 그러므로 주 예수를 만나는 일이다.
주 예수의 십자가의 희생은 하나님의 분노와 인내를 모두 해결했다. 그리고 주예수는 사람들에게 나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원히 산다고 했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이는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잘 믿었어도 하나님을 떠났어도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았던 것도 다 좋다. 그러나 주 예수를 믿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주 예수로 인해서만 모든 것이 다 풀렸기 때문이다.
주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다. 주 예수는 과거를 묻지 않는다. 물을 필요도 없다. 자신의 몸을 나무에 걸어 죄를 용서했는데 과거를 물으면 자신을 부인하는 격이 된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과 모든 인류에게 두번째 기회가 왔는데 그 이름이 주 예수다. 첫번째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세번째가 또 있느냐 하면, 이제 더이상은 없다. 주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분노를 없앤 사람이고 그리고 우리에게는 긍휼을 가져온 사람이다.
주 예수로 인하여 모든 것이 새롭게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주 예수를 믿고 성령의 말씀을 듣는 일이 긍휼을 얻는 길이다. 이제는 성령의 말씀만있다. 이전에 교리도 율법도 가르침도 주 예수의 피로 모두 사라졌다. 다 지나갔다. 그가 누구든지 간에 성령의 말씀을 통해서만 하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다.
주 예수가 오기 전에는 죄만 있었고 죄는 하나님의 화를 더욱 화나게했고 하나님은 그 분노를 인내하셔야 했다. 주 예수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시 주 예수와 함께 연기 된다. 그러나 주 예수가 없는 긍휼은 없다. 긍휼은 이제 믿는자들의 긍휼로 한정이 된다. 우리가 주 예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긍휼과 함께 많은 책임이 따른다. 예수가 우리의 마지막이다. 다시 예수 믿기전으로 돌아가면 긍휼은 더이상 없다. 주 예수는 글이 아니라 영이다. 그 영의 말씀과 함께 끝까지 함께 걸어가는 길이 가장 안전하고 좋은 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가는 나라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가는 나라다. 그리고 긍휼에서 긍휼로 가는 나라이다. 결과적으로 주 예수는 하나님의 화를 없앴고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완전히 끝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이 시원했을까? 하나님은 주 예수의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은 다시 온유하게 되셨고 하나님은 더 이상 화를 내는 일이 없어졌다.
주 예수의 긍휼은 하나님의 분노를 지웠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긍휼의 하나님이라고 이제 하나님 자신을 선언해도 된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의 캐릭터를 아예 빼버려도 아무 문제 없다. 주 예수의 십자가의 물과 피로 인해 ‘노하기를 더디하신다’는 그 부분이 영원히 지워졌다. 그래서 주 예수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온전히 확증시킨 긍휼의 왕이었다. 긍휼로 하늘과 땅을 모두 풀었다. 이제 그 긍휼과 만나는 일만 우리에게 남아 있다. 세상이 두려워하면서 진짜로 기다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긍휼을 입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긍휼이 없으면 세상과 나눌 것이 아무것도 없다. 믿음은 긍휼에서 긍휼로 가는 것이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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