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하지 않는 일들
세계 도처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 외에도 전쟁을 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이 사람들이 다치고 죽습니다. 크고 작은 교통사고로 다치고 죽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루에 2만명 정도라고 합니다. 1년이면 730만명이 굶어서 죽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건강하다가 갑자기 병들어 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을 우리가 원하는 일들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하필이면” 이 말은 안 좋은 상황에서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도 종종 일어납니다. 개인적으로도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일어납니다. 이것은 우리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런가하면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라도 생각합니다. 긍정적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2. 살로메의 부탁
예수님의 12제자 중 요한과 야고보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세베대이고 어머니는 살로메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할 때에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메가 예수님께 나와서 두 아들의 문제를 부탁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나라의 왕이 되시면 요한과 야고보를 하나는 예수님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도 똑같은 부탁을 합니다. 그때에 다른 제자들이 분을 냈다고 했습니다. 왜 다른 제자들 역시 같은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도 잘 알 수 있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지금입니까?” “그런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행 1:8)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120명의 신도들이 예수님의 약속대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중 오순절에 성령의 임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을 받아 방언도 하고 회개도 하고 침례도 받고 그날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 3000명이 이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점점 더 부흥되어져 수만명에 이르게 됩니다. (행 21:20) 그러자 이일에 가장 시샘을 하며 싫어하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였습니다. 즉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이였습니다. 이런 것을 눈치 챈 헤롯왕이 그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야고보”를 죽입니다. (행 12:1-4)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고”
3. 야고보의 순교
스데반 집사에 이어 제자 야고보가 순교하게 됩니다. 그때에 나이가 약 40살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러면 어머니 살로메도 살아 있었을 것입니다. 야고보가 예수님 우편이나 좌편이 아니고 가장 먼저 순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다른 제자들과 많은 신자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야고보가 제자 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됩니까? 살로메는 “왜 하필 내 아들입니까?”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12제자중 A 그룹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항상 예수님과 함께 다녔습니다. 변화산에도 같이 올라가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함께 동행을 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간 그곳에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동행을 합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이 세 사람은 항상 동행했습니다. 이처럼 야고보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입니다. 그런 그를 제자 중에서 제일 먼저 순교자가 되게 하십니다. 이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가 아닙니다. 그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그는 예수님 부활 후에 믿고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제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아닙니다.
4. 우리는 어떤가요?
믿음생활 가운데 참 힘들고 이해 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가 많습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나에게 질병이 생긴다거나 그럴 때에 우리는 그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왜 하필 저에게 이런 일이 생깁니까?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 저에게 이런 일이 생깁니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어떤가요? “다른 권사님 집사님 성도들이 많은 왜 하필 저에게 이런 일을 시키시나요?”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5. 가는 길이 다르다
각자의 길이 있습니다. 나의 길이 너의 길이 있습니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55:8)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하나님께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시킬 사람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습니다. 우상 만들어 파는 아브라함을 70살에 믿음의 조상으로 등장시킵니다. 모세는 80이 되었을 때에 부르셔서 민족의 지도자로 등장시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핍박하던 바울도 때가 차매 역사의 무대에 등장시켜서 오히려 그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흠이 없나?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부인을 동생이라고 속인적도 있습니다. 모세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기도 합니다. 바울도 마가 요한의 일로 바나바와 크게 다투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역사의 무대에 조연으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크신 역할을 맡기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맡기신 역할이 있습니다. 야고보처럼 순교하라면 순교 해야 합니다. 아니면 무슨 일을 맡기든지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명 잘 감당하라고 달란트와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을 맡기십니까?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일이 네게 유익이 됨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의미 없는 고난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 없는 역경도 없습니다. 우리의 고난과 역경의 현장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기적의 현장입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가 아니고 “나같은 자에게 이런 귀한 일을” 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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