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간직한 한국전 유품 동포 사회에 기증
“대한민국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어 고맙다”

By 동자강 기자
info@kjhou.com
제76주년 6·25 전쟁 기념식의 여운이 이어지는 가운데, 텍사스 남부 지역에서 한 미국인 참전용사와 한국인 동포 작가가 7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맺은 국경 없는 우정과 보은의 소식이 전해져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텍사스 남부에 거주하는 94세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잭 플로이드(Jack Floyd) 씨는 고령으로 인해 혼자 생활하기가 어려워짐에 따라 딸이 거주하는 미주리주로의 이주를 결정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텍사스 터전을 정리하던 플로이드 씨는 이주를 며칠 앞두고 평생 목숨처럼 아끼며 소중히 간직해 온 한국전쟁 당시의 희귀 유품과 역사적 사진들을 지역 동포인 이훈구 씨(65)에게 전량 기증했다. 이 씨는 현지에서 기독교 신앙 칼럼니스트이자 신앙 에세이 및 소설 작가로 활동 중인 인물이다.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은 약 2년 전, 이훈구 씨가 26년째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텍사스 남부의 개인 사무실에 플로이드 씨가 우연히 찾아오면서 시작됐다. 대화 중 그가 열아홉 어린 나이에 참전했던 미 해병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 씨는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청춘을 바친 참전용사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다. 이후 이 씨는 관련 기관과 적극적으로 조율하여 1년 전 플로이드 씨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하는 ‘평화의 사도(Ambassador for Peace)’ 메달을 직접 전달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 메달을 목에 건 플로이드 씨는 “한국이 나를 아직도 기억해 준다는 것이 무엇보다 고맙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같은 헬스장을 이용하는 이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안부를 나누고, 플로이드 씨가 이 씨의 사무실을 수시로 찾아와 치열했던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쌓아왔다.



통행증부터 채플 순서지까지
미주리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이 씨의 사무실을 찾은 플로이드 씨의 손에는 70여 년간 단 한 번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둔 빛바랜 서류 파일이 들려 있었다. 기증된 유품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1951년 당시 실제 심리전에 사용됐던 ‘안전통행증(Safe Conduct Pass)’이다. 북한군과 중공군 병사가 유엔군에 투항할 경우 생명과 안전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긴 이 통행증은 당시의 긴박했던 전황을 증언하는 귀중한 역사 자료다. 또한 북한 측이 제작한 영문 전단과 유엔군이 제작한 한글 전단도 포함됐다. 특히 유엔군 전단에는 ‘한시조-한핏-한민족!’이라는 서체 뚜렷한 문구가 적혀 있어 뜨거운 민족애와 심리전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이외에도 1952년 한국 전장 현지에서 발행된 미 해병 제1사단(First Marine Division)의 채플 예배 순서지, 전사 장병 추모 헌당예배 프로그램, 미 해병대 만찬 프로그램 및 식사 메뉴, 미 해군의 전통적인 적도 통과 증서(Shellback Certificate), 그리고 해병대 동료들과 전쟁 당시 한국의 풍경을 생생히 포착한 종군 사진 여러 장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세월 넘어 이어진 한미 우정
평생의 추억이 담긴 귀한 유품을 건네받은 이훈구 작가는 깊은 보은의 마음을 담아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이 작가는 플로이드 씨와 함께 찍은 사진, 평화의 사도 메달 사진을 조합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용기와 희생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영문 감사 문구를 아로새긴 맞춤형 기념 액자를 제작해 전달했다. 2026년 7월 10일 자 날짜와 이 작가 가족의 이름(Hoon Lee and Family)이 선명히 박힌 액자를 받은 플로이드 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비록 플로이드 씨는 텍사스를 떠나 미주리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두 사람은 앞으로도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우정을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기증을 받은 이훈구 씨는 “이 자료들은 단순한 오래된 유품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역의 토대가 된 참전용사들의 생활, 전우애, 신앙을 증언하는 살아있는 역사”라며 “참전용사들이 점차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는 지금, 이들이 남긴 소중한 기록과 기억을 후세에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참전용사들의 증언과 유품을 보존하는 일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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