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라. 이미 기적을 체험하거나 소문을 듣거나 한 사람들입니다.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유월절이면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도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몰려 드는 시기입니다. 그러니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모여 들었을 것입니다.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예수님의 설교가 짧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설교를 했을 것입니다. 모여든 군중들이 배가 많이 고팠을 것입니다. 더 이상 말씀을 들을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원래 배가 고프면 신경이 예민해 집니다. 그래서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밥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빵을 주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적어도 200 데나리온이 필요합니다. 돈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에게도 제자들에게도 없습니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그런데 안드레가 내놓은 해결책은 가당치 않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있는 보리빵 5개 물고기 2마리입니다. 이걸로 해결이 될까요. 안드레 자신도 알지요.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요.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 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예수님께서는 된다 안된다가 아니고 앉게 하라고 하시고 기도하시고 빵을 떼어서 나누어 주라고 하시고 물고기도 나누어 주라고 하십니다.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아멘 기적은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그 많은 사람이 먹고 남은 것을 모두어 보니 12 광주리였습니다. 할렐루야!!
1. 부족한 삶
살아가다 보면 항상 이런 문제가 생겨납니다. 가정에도 생겨나고 교회에도 생겨납니다. 우리 인생에 부족함 갈급함이 생겨납니다. 이런 때에 불신자들 신자들, 신자 중에도 믿음이 좋은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이 다릅니다. 상황 대처에 대한 생각이나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2. 보통사람들 : 빌립 같은 사람 (5-7절)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 어치의 빵도 부족하겠습니다” 보통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대답합니다. 틀린 말은 전혀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은 빌립을 아시기에 시험코자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를 시험(테스트)해 보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신 것 아닙니다. 빌립이 어떻게 하는 지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해 보신 것 같습니다. (창 22장) 아브라함에게 진짜로 이삭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기를 원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일려고 할 때에 다급하게 말리신 것입니다. “네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아노라” 하나님은 미리 숫양 한 마리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빌립의 계산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맞습니다. 그러나 그 계산은 세상적인 계산이고 하나님의 계산법은 아닙니다.
3. 뭔가 해 보려는 사람 (안드레 같은 사람)
빌립이 이와 같이 계산적인 태도를 취했을 때 안드레는 엉뚱한 말을 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9절) 빌립에 비해 안드레는 훨씬 더 행동이 앞서는 사람입니다. 빌립처럼 앉아서 계산기만 두드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뭔가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하려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하기 싫은 사람은 이유나 핑계를 댑니다” 빌립이 이유나 핑계를 대는 사람이라면 안드레는 뭔가를 해 보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궁리를 하고 뭔가 구체적인 행동을 모색하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어떤 어린 아이 하나가 싸온 도시락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서 예수님께 보고합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약간은 미심쩍은 모습을 보입니다. (9절) 예수님은 이 믿음 없는 두 제자에게 보란 듯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았던지 여자와 어린이들을 빼고 남자만 오천 명쯤 되었습니다.
4. 어린아이의 희생
흥미로운 것은 이 도시락을 선뜻 내놓아 오병이어의 기적을 가능케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일절 없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 소년의 이름이며 아버지가 누구고 고향이 어디이고 세세히 밝혀서 그 선행을 한 소년을 광고하고 알릴 텐데 성경은 일절 침묵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소년은 자기의 것을 나눌 줄 아는 참 착하고 순수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부각되어야 할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밝히 드러나야 하고 인간은 감추어져야 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기적은 사람을 통해서 일어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드리는 보리빵 5개. 물고기 2마리가 큰 기적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적입니다. 여자 어린아이 외에 5000 명이면 적어도 2만명 이상의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고도 12광주리가 남은 사건입니다. 엄청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이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보리떡 5개 물고기 2마리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 많은 무리 중에 부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능력 있는 지방 유지들도 많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사실 2만 명이 하루 종일 은혜 받은 대로 그 자리에서 헌금을 했다면 200데나리온 같은 것은 충분히 걷혔을 것이고 아마 그 중에는 그런 헌금을 혼자 할 수 있는 실력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나설 만한 사람은 한명도 나타나지 않고 어린아이 하나가 발견되어서 예수님 앞으로 불려나왔습니다. 아마 제자들도 모인 사람들도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보잘것없는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의 점심도시락 보리빵 5개 물고기 2마리로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내가 드린 보리빵 5개 물고기 2마리는 2만명이 먹고 남는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기적의 장소에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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